박희태 대표는 사퇴하지 말라

편집국장 고 하 승

고하승

| 2009-08-10 16:53:50

한나라당을 보면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broken family)’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실제 한나라당의 행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생각이다.

우선 박희태 대표가 당 대표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당 대표인지 분간이 안 된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장광근 사무총장이 10월 재보궐선거와 관련, 경남 양산 지역 출마설이 나오는 박희태 대표가 공천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그는 1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라고 꼭 공천되는 거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공천 원칙은 당선 가능성 위주”라고 설명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공천 원칙을 당 대표가 아니라, 당 대표가 임명한 사무총장이 정한다는 사실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장 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장 총장은 자신을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임명한 사람이 박 대표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한나라당 대표가 따로 있고, 친이(親李)당 대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대체 당 사무총장이 사실상 하극상(下剋上)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발언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날 장 총장은 박 대표가 출마할 경우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당의 부담도 덜고, 야당의 전략적인 측면을 극소화시키기 위해서는 대표직을 가지고 나가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장 총장의 발언 의도가 분명하게 엿보이는 대목이다.

즉 당 대표라도 공천을 받지 못할 수가 있는데, 대표직을 사퇴하고 출마한다면 공천을 줄 수도 있으니, 대표직을 사퇴하라는 으름장인 셈이다.

사무총장이 당 대표에게 이런 으름장을 놓는 정당이니 ‘콩가루 집안’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장 총장은 왜 박 대표에게 사퇴압력을 가하는 것일까?

사실 장 총장뿐만 아니라 친이 가운데서도 친 이재오 세력들이 대거 나서서 ‘박 대표에게 사퇴 후 출마’ 압력을 가하고 있는 분위기다.

앞서 공성진 최고위원도 지난 4일 박희태 대표의 10월 양산 재선거 출마와 관련, “대표직을 유지한 채 출마하는 건 위험하다”며 ‘사퇴 후 출마’ 선호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왜 당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한 채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그토록 위험한 것인지, 도저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을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라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국정운영을 잘못한 이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지 박 대표에게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박 대표에게 “계급장을 떼라”는 친이 측의 요구는 무리다.

그렇다면, 친이 측이 박 대표에게 사퇴압력을 가하는 배경에는 다른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일단 박 대표가 사퇴할 경우, 현행 당헌 당규에 따르면 차순위 득점자인 정몽준 최고위원이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

그러나 박 대표와 함께 최고위원가운데 한 두 사람이 더 사퇴를 결심할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즉 박 대표와 함께 공성진 박순자 의원과 같은 친 이재오계 최고위원들 가운데 한 사람만 더 동반 사퇴하더라도 조기전당대회가 불가피해 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장 총장의 이날 발언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이다.

한마디로 박 대표를 사퇴시킨 후, 친이 최고위원을 한두 명 더 사퇴시켜 자신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10월 이전 조기전당대회’를 관철시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는 말이다.

실제 이재오 전 의원은 조기전대를 자신의 화려한 정계복귀 발판으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한나라당이 조기전대를 하든 말든, 또 이 전 의원이 어떤 형식으로 정계복귀를 하든지 그건 필자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나 국가발전을 위해서라도 집권여당이 친이-친박 계파 갈등으로 인해 사당화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희태 대표는 경남 양산 재선거에 출마하더라도 대표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맞다.

11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 대표가 회동을 갖는다고 한다.

물론 이 자리에서 박 대표는 자신의 출마결심을 이 대통령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때 이 대통령이 박 대표에게 사퇴를 종용하더라도 박 대표는 그 제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 대표는 이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박 대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게 박 대표를 대표로 선출해준 당원과 대의원들의 뜻을 받드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회동을 계기로 당권과 대권과 분리된 현행 당규가 제대로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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