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發 개헌론, ‘용두사미’되나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8-18 18:21:16

지금 정치권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작심한 듯 ‘개헌론’이라는 칼을 빼들었는데 정작 여권은 그 의미를 축소시키려 애쓰는 반면, 민주당은 오히려 이를 적극 환영하고 있는 마당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광복절기념 경축사를 통해 이 대통령은 "현행 선거제도로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의정활동도 국정보다는 지역에 우선하게 된다"면서 "국회의원이 지역에 매몰되지 않고 의정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이 대통령은 "너무 잦은 선거로 국력이 소모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정치적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며 "선거횟수를 줄이고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 먼저 이 대통령이 언급한 ‘지역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선거제도 개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볼 때, 1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로는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 또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배출되기 어려운 만큼 2∼5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국력이 소모되는 선거횟수를 줄이는 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다수의 국민들은 5년의 대통령 임기와 4년의 국회의원 임기를 서로 맞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방향에 대해 논의하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어럽쇼?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다.

먼저 선거구제 개편론을 보자.

청와대와 여당은 선거제도 개편론이 중·대선거구제 개편 논쟁으로 번지는 것을 잔뜩 경계하는 분위기다.

실제 당청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 제도 도입으로 한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권역별비례대표제나 석패율 제도 도입이 우선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며 "이런 제도에다 중·대선거구제까지 하라는 것은 한나라당에게 모든 걸 손해 보라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대 환영이다.

중·대선거구제 개편이 지역주의를 돌파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라는 게 민주당의 공식입장이다.

실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을 얘기한 것이 지역구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데 그런 차원이라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저희는 환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논의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선거 횟수를 줄이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 역시 주객이 전도됐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국력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대통령의 임기를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4년에 맞춰 동시선거를 실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국민들도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고치는 개헌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러나 당청은 아예 그럴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실제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어 동시에 선거를 치르는 방안이 아니라 단지 재보궐선거의 횟수만 줄이자는 것이라며, 그 의미를 대폭 축소했다.

사실 대선과 총선 비용에 비하면 재보궐선거 비용은 조족지혈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진정성이 없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매우 위중하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끝내 ‘인동초’가 지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애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먼 길 가시기 전에 찾아뵙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더욱 그렇다. 부디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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