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을 보수라 부르는가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8-23 12:12:26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을 위해 북한 조문단이 방문했다.

그런데 ‘자유북한운동연합(박상학 대표)’ 등 극히 일부 극단적인 수구단체 회원 100여명이 지난 22일 12시 20분경 북한 조문단이 거하는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 앞에 모여 항의집회를 가졌다.

앞서 지난 21일에도 유사한 난리가 있었다.

북한 조문단이 이동한 길목에선 어김없이 수구단체 회원들 수십여명이 떼로 나타나 하루 종일 시위를 이어나갔다.

실제 북한 조문단의 국회 빈소 도착이 임박한 시각에 대한민국 특수임무 수행자회 회원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며, 이를 막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가 하면, 같은 시각 맞은편에서는 라이트 코리아 등 10여 개 극우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조문단 파견을 우리 정부가 허가한 것은 치욕적인 일이라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또 김대중 도서관 근처에서도 이들 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벌이다 제지를 당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반국민들은 당연히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금, 조문단을 통해 남북관계를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북측 조문단을 단순한 조문단으로만 보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북측도 자신들을 ‘특사 조문단’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필시 이번 조문을 남북당국자 간 관계회복을 위한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고, 우리 정부도 이를 잘 활용하면 연안호 조기송환과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을 손쉽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양측 모두에게 좋은 기회다.

아니나 다를까. 북 조문단이 23일 청와대를 예방했다.

앞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전날 “북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은 새로운 남북관계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연안호 조기송환과 이산가족 상봉, 나아가 남북관계의 개선은 진보-보수-중도 등 자신의 성향과 관계없이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염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일부 극단적인 수구세력이 마치 전체 보수세력을 대변이나 하는 것처럼 ‘보수단체’라고 싸잡아 부르고 있으니, 걱정이다.

그 화면을 지켜보는 일반국민들은 그렇게 난동을 부리는 게 일반적인 보수단체의 생각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대다수의 보수단체들 역시 남북관계가 극단적인 긴장관계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보수의 대부(代父)격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리도 독일처럼 남북간에 평화회담을 할 것을 결심하고 북한에 제의해, 결국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7.4공동성명’을 이끌어 내지 않았는가.

실제 지난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그해 5월 2일부터 나흘간 평양을 방문해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곧이어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5월29일부터 나흘간 서울을 방문해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해 7월 탄생한 것이 7.4 남북공동성명이다. 이는 분단 사반세기만에 나온 최초의 남북합의문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요 업적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더구나 그로부터 30년 뒤인 지난 2002년 5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나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과 1시간 단독 면담, 2시간의 만찬을 같이했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 등 이례적인 환대를 받았다. 두 사람은 선친들이 합의한 "7.4 공동성명의 결실을 맺고 평화통일을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일부 극단적인 수구세력이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역사를 후퇴시키려 들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다.

따라서 언론은 그들의 난동을 보도할 때, 더 이상 ‘보수단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5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본인의 주관적 이념성향'을 묻는 질문에 43.4%가 본인의 이념성향을 '중도'라고 답했다.

'진보'라고 말한 사람은 31.7%인 반면, '보수'라고 답한 사람은 24.9%에 불과했다.

자신의 성향을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이 이처럼 적은 데에는 언론의 이런 잘못된 보도가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언론은 보수와 수구를 구별해 주기 바란다. 아울러 국민들은 보수와 수구를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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