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박희태 대표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9-02 16:23:09

정당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런 물음에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당원과 대의원들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정당은 몰라도 한나라당만큼은 친이(親李, 친 이명박)세력이 주인이고, 당원과 대의원들은 그저 손님에 불과할 뿐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만 살펴보자.

박희태 당 대표가 오는 10월 28일 실시되는 재.보궐선거와 관련, 경상남도 양산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 그런데 그가 공천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공천권을 친이 세력이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원과 대의원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당 대표가 ‘낙천(落薦)’ 당하는 기상천외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실제 지난 달 28일 구성된 공천심사위원회는 “당 대표라고 해서 특혜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공천심사위원장은 친이 핵심 인사인 장광근 사무총장이다.

그는 수차에 걸쳐 “당선 가능성이 공천의 최우선 원칙”이라며 “당 대표라고 해서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말해 왔다.

심지어 그는 “당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당 대표보다 당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된다면 당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 공천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당원과 대의원들이 당 대표로 선출한 사람보다도 친이 세력이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친이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여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방식이다.

여연 소장 역시 장광근 사무총장 못지않은 친이 핵심인사인 진수희 의원이다.

그런데 여연은 최근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박희태 대표의 부정적인 면, 즉 고령(高齡)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기상천외한 설문지를 돌렸다.

그 결과 박희태 후보는 김양수, 유재명 후보에 무려 10%포인트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당연한 결과다.


실제 여연은 “양산 국회의원 후보로 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세 명의 예상후보에 대해 ▲당대표를 지낸 71세 박희태 후보 ▲국회의장 비서실장을 지낸 48세 김양수 후보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지낸 54세 유재명 후보라고 설명했다.

필자는 여연의 설문 내용을 들여다보다가 너무 웃겨서 허파가 뒤집어 지는 줄 알았다.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면서 나이를 이처럼 강조하는 여론조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박희태 대표가 발끈하고 나선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 대표 측은 2일 “여연에 영향력이 큰 장광근 사무총장과 진수희 여연 소장 등 친이 주류 측 의중이 설문에 반영된 것 아니냐”며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즉 친이 세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천하기 위해 엉터리 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여연은 “과거에도 여연 조사는 후보 나이를 적시해왔다.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여연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사실 여론조사는 믿을 게 못된다.

지난 4월 경주에서 실시한 재.보궐선거에서도 여론조사가 무의미하다는 게 증명된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여연 조사에서도 경주 정종복 후보가 약간 앞서는 것으로 나오긴 했지만, 외부기관 조사에서 경주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친박 무소속 정수성 후보가 큰 표 차로 승리했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당원, 대의원 및 일반 국민들이 참여한 현장투표에서 승리했음에도 이처럼 믿지 못할 여론조사 때문에 패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친이 세력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내는 도구로 여론조사라는 것을 활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한국갤럽 회장 출신으로 여론조사 기관을 장악하고 있음은 익히 세상에 알려진 바와 같다. 물론 최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 측근이다.

따라서 여론조사를 공천의 잣대로 삼겠다는 친이 속셈은 아무래도 냄새가 난다.

그나저나 당 대표이면서도 자신의 공천 문제로 전전긍긍해야 하는 박희태 대표가 불쌍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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