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네티즌 감시체제 도입 목적은?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09-08 16:25:31

인터넷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경찰이 인터넷 댓글에 대해 실시간 감시체제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나 네티즌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

경향신문은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댓글과 첨부파일을 실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인터넷회선을 통째로 감청하는 국정원의 '패킷 감청'에 이어 경찰까지 수사-정보기관이 총동원돼 경쟁적으로 네티즌들의 숨통을 죄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네티즌들이 분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 경찰청 보안과는 지난 7월 '보안 사이버 검색·수집 시스템' 강화 사업을 새롭게 발주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과업 지시서'에 따르면 해당 시스템은 경찰이 지정하는 특정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물과 댓글, 아래한글·액셀 등으로 제작된 첨부파일 내용을 실시간으로 검색·수집해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저장할 수 있게 돼 있다.

즉 '키워드 검색'을 통해 특정 단어가 들어 있는 게시물을 인터넷 사이트 전체에서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시스템이다.

경찰은 검색 대상 사이트로 언론사와 포털사이트,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대부분 포함시켰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이 같은 경찰의 감시체제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맘껏 조롱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 이날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명박 정권과 경찰을 질책하는 댓글을 남기는 것으로 항의표시를 하고 있다.

‘편지’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네티즌은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 맞아?”라고 반문한 후 “그러게 투표를 잘 해야지...”라고 자책하는 글을 올렸다.

‘스트롱거’는 “이명박 난 당신이 싫어!”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싫어할 권리조차 없나? 왜 검색질이야?”라고 쏘아 붙였다.

또 ‘seraph’는 “이게 민주주의냐? 나 잡아가라 기꺼이 죽어주마! 정치 제대로 할 생각은 없고 멀쩡한 시민을 잡아 족치려하다니”라며 “7000년간 한반도에 잠들어 있는 민족 선열들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질책했다.

‘말테’는 “2mb, 촛불, 광우병, 떡검, 조폭경찰..이렇게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는 거야? 정말 어이없다”고 꼬집었고, ‘노란 꽃비’는 “친서민이네, 중도실용이네 하면서 실상은 최상위층 보호하는 정책이나 펴고, 이젠 서민들이 무슨 얘기하나 일일이 정보 수집하는 정책을 펴다니, 국민은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감시대상이니 공산정권과 다를 바가 없군”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얀어둠’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라고 반문한 후 “(국민과)소통 한다면서 총리까지 갈아치울 때는 언제고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라고 한탄했다.

대체 이 같은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무리하게 네티즌의 입을 봉쇄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혹시 차기 대권주자들 가운데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을 견제하기 위함은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네티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대권주자를 꼽으라면 단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인터넷상의 팬클럽은 ‘박사모’, ‘호박넷’, ‘근혜사랑’, ‘근혜동산’, ‘박애단’ 등이 있다.

박사모와 호박넷의 회원 수는 각각 5만여명을 훨씬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혜사랑과 박애단 회원수도 각각 1만여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최근에 발족한 근혜동산 회원 수도 벌써 5000여명을 넘어섰다.

이들 회원 수를 모두 합치면, 중복 가입자를 제외하고도 10만명이 훨씬 넘을 것이다. 실로 대단한 숫자다.

또 유시민 전 장관의 지지팬클럽인 ‘시민광장’ 회원 수도 2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박 전 대표의 팬클럽 회원 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나 이재오 전 의원 등 이른바 ‘친이’ 대권주자들의 팬클럽 회원 수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편이다.

실제 정몽준 대표의 팬클럽 ‘mj21’의 회원 수는 극히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경기지부는 지난해 11월29일 13명이 모여서 결성했고, 인천지부는 올해 2월17일 11명이 모여서 결성했다고 한다.

앞서 서울지부는 지난해 11월15일 39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했으나, 전국각지에서 참관한 회원들을 제하고 나면 서울총회 창립 회원수는 고작 25명뿐이라고 한다.

친이 주자들 가운데 제법 팬클럽 회원 수가 많다고 하는 이재오 전의원의 경우는 어떤가.

그의 조직력이 집약된 팬클럽 ‘재오사랑’이 현재 '1+1 회원 배가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18일 회원 5000명을 돌파한 후 지금까지 사실상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상태다.

박 전 대표나 유 전 장관에 비하면 아예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적다.

따라서 네티즌들의 입을 봉쇄하면, 박 전 대표와 유 전 장관이 위축되는 반면 정 대표나 이 전 의원 등 친이 주자들은 상대적으로 득을 보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경찰의 상시 감시체제로 그들의 의욕을 꺾을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지난 해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사모와 호박넷 회원들 가운데 수백여명이 검경의 조사를 받았지만, 그들이 위축당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결국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든 꼴이 되고 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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