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대표께 묻는다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10-06 16:12:32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6일 “행정구역 개편, 선거제도 개선, 개헌 등 한국정치의 개혁을 위한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날 한나라당대표 취임 한 달(7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한국정치는 지연, 학연, 혈연의 고리를 끊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이번 회기 안에 헌법개정 논의 등을 위한 관련 특위를 출범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 대표는 바른 말을 정말 많이도 했다.
실제 그는 “한국 정치는 새로운 미래가 절실하며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는가 하면, “가죽을 벗겨내는 혁신이 여의도에 필요하다”는 발언도 했다.
또 그는 “총선 때마다 사람을 바꾸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개선은 커녕 개악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도 했다.
심지어 그는 “이런 대한민국 정치의 1차적 책임은 다수당에 있고 당연히 한나라당부터 먼저 변화하고 개혁돼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들이다.
그런데 필자의 귀에는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소리가 오로지 “박근혜를 잡겠다”는 소리로만 들리는 것은 왜일까?
뿐만 아니라 그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지당하신(?) 말씀들 조차 모두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도 정 대표에 대한 불신과 친이(親李·친 이명박)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은 탓일 게다.
우선 그가 말한 세 마리 토끼, 즉 행정구역 개편, 선거제도 개선, 개헌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꿈이자 간절한 희망사항이다.
그 가운데 행정구역 개편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이미 여야 간에 폭넓은 공감대도 형성돼 있고, 국민여론도 대체적으로 이를 지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선거제도 개선과 개헌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그 목적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마당이다. 행정구역이라는 당위성을 앞세워 선거제도를 친이 세력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국민반대에도 불구 분권형 대통령제를 만들어 유력한 대권주자를 주저앉히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실제 필자는 이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선을 통해 한나라당이 안정적으로 원내 1당이 되도록 하는 동시에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허수아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대표가 이 대통령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말 그의 발언에 진정성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우선 그는 이날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실제 정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유망한 후보”라면서도 “민주 시장경제에서는 ‘플레이어’가 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국민이 볼 때 대통령감이 되는 후보가 3~4명 있어야 여당으로서 안정감을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과 함께 박 전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을 대권주자로 거론했다. 물론 여론조사를 토대로 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그의 속내일지도 모른다.
사실 정 총리나 이 위원장은 모두 친이 세력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마당이다.
반면 오 시장이나 김 지사는 아직 그런 위치가 아니다. 따라서 정 총리나 이 위원장이 없는 대통령 후보 경선이라면 자신이 친이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지를 받는 게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당권을 사실상 거머쥐고 있는 이 대통령과 분권형 대통령제를 염두에 둔 ‘빅딜’을 이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정 대표에게 묻겠다.
개헌을 하려면, 대통령 중임제인가? 아니면 이원정부제인가?
그 답에 따라 우리는 정 대표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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