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침묵행보’ 걱정 말라

편집국장 고하승

고하승

| 2009-10-14 16:58:46

요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지지자들이 그의 조용한 행보로 인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그를 지지하는 팬클럽조차 ‘침묵 행보’의 뜻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오죽하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는 언론인인 필자에게까지 “이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 어린 전화를 봇물처럼 쏟아내겠는가.

그러나 조급해 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조금만 더 멀리 보면 그 결과가 빤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선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은 이러다 정몽준 대표 체제가 견고해 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각 언론에서 ‘박근혜 대항마, 정몽준 급부상’이라는 식의 보도를 일제히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근시안적 해석이다.

물론 당장 눈앞의 현상만 보자면, 정몽준 대표체제에 잔뜩 힘이 실리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최근 ‘2월 조기전당대회론’을 들먹였다가 당내 반발여론에 부딪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단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특히 이번 10.28 재보궐선거에서 정몽준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이 승리할 경우, 정 대표체제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그런데 현재 분위기 상으로는 ‘한나라당 우세’가 뚜렷하다. 한나라당 자체 분석에 따르면 최소 3곳에서 많으면 5곳 모두 ‘싹쓸이’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예상대로라면, 정몽준 대표 쪽으로의 급격한 ‘힘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이는 상대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 되고 말 것이다.

더구나 재보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내년 지방선거까지 승리로 이끈다면, 정 대표는 그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취약한 당내 기반을 단숨에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이 바로 이런 사태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10월 재보선의 승리로 정몽준 대표 체제가 일시적으로 견고해 질수는 있지만, 그의 한계는 거기까지다.

불행하게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지금 곳곳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민주당 등 야권 후보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이명박 정권이 최근 ‘친서민 정부’ ‘중도 노선’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에 대한 기대감으로 여당 후보들을 지지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태생적으로 ‘친서민’, ‘중도’를 실천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실제 이 대통령이 직접 재래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사 먹는 등 각종 ‘서민 쇼’를 연출하고 있지만, 이른바 ‘부자 감세’ 정책으로 인해 내년 복지 예산이 턱없이 줄어드는 등 반서민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 이명박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대부분 극단적인 보수성향의 ‘뉴라이트’ 인사들이다. 따라서 비록 중도 성향의 정운찬 총리를 영입했다고는 하나, 재벌기업 위주의 신자유정책기조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

이처럼 말로는 ‘친서민’과 ‘중도’를 외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국민들은 ‘당했다’는 생각에 이명박 정권에 대해 분노를 표출할 것이고, 결국 내년 지방선거에서 ‘반 MB’ 정서가 극에 달하고 말 것이다.
즉 ‘반 MB’ 정서는 한나라당 후보들을 철저하게 응징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라 점도 한나라당으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철저하게 친서민 정책을 실천하고, 중도 정책을 실천해 나간다면 노무현 서거 1주년 추모행렬 정도는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없는 상태라는 게 문제다. 결국 ‘반 MB’정서가 노무현 서거 1주년 추모행렬로 이어질 것이고, 한나라당 후보들은 이른바 ‘노풍(盧風, 노무현 바람)’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박풍(朴風, 박근혜 바람)’이 불어만 준다면 노풍 정도는 가볍게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박풍’이 불어 닥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그동안 “모든 선거는 당 지도부의 책임 하에서 치러지는 게 맞다”며 지원유세 요청을 거절한 채 오직 의정활동에만 전념했던 원칙을 스스로 깨뜨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탄탄대로를 걷던 정몽준 대표 체제는 급격히 와해 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지방선거 이후 한 달 만에 치러지는 전당대회에 정 대표는 도전장을 내밀 수도 없는 최악의 사태가 초래 될지도 모른다.

반면 차기 총선을 우려하는 국회의원들은 박 전대표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박 전 대표의 ‘침묵 행보’에 대한 우려는 한낱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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