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글 쓰기, 지옥이되 황홀한 지옥”
자전적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서 40년 문학인생 술회
차재호
| 2009-10-18 19:05:23
“글 쓰기는 그야말로 지옥인데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글이 좋게 써질 때가 있다. 성취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만족감이 오기 때문에 지옥이되 황홀한 지옥이다.”
자전적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을 출간한 소설가 조정래(66)씨가 MBC TV ‘일요인터뷰人’에 출연, 문학인생과 삶의 철학 등을 털어놓았다. 40년 남짓 ‘글 감옥’에서 조씨는 대하소설 3편을 포함, 70여권의 소설을 썼다. 그야말로 글 감옥이었다.
조씨는 “태백산맥을 쓸 때는 TV 뉴스도 방해가 되고 집사람과 밥상에 앉아있는 것까지도 방해가 돼 성 나자로 마을에 가서 글을 썼다”고 전한다. “아리랑의 경우 너무 자료가 많아 이동할 수 없어서 집에서 썼는데 창살 없는 감옥이 틀림없었다”는 고백이다. “아무하고도 만나서도 안 되고, 단 하나의 대화도 신경이 거슬렸다”면서 독방에 갇힌 듯 글을 썼다.
글 감옥을 빠져나온 조씨의 작품들은 그동안 1400만부 정도 팔려나갔다. 쌓아올린다면 2800㎞가 되는 셈이다. 서울과 부산을 네 번 왕복하는 거리다.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정리한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거친 캐릭터들은 1200명에 달한다.
조씨는 “태백산맥을 쓸 때 이미 아리랑과 한강을 함께 쓸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다 연결됐기 때문에 한 시대만 봐서는 통시적으로 우리 민족의 삶을 엮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 세운 계획이 빗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그는 “최단 시간 내에 쓰려고 20년 동안 술을 한 번도 안 마셨다”고 밝힌다.
이렇게 조씨는 25년간 대하소설이란 글 감옥에 수감됐다. 원고지로만 5만매가 넘고, 쌓았을 경우 550㎝에 달하는 분량을 완성시켰다. 오로지 펜으로만 쓰인 조씨의 원고는 태백산맥 문학관, 아리랑 문학관 등에 보관돼 있다.
컴퓨터로 쓰지 않는다. “컴퓨터가 일반화 되면서 작가들의 소설이 기계의 속도에 얹히다보니까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문장의 긴박감이 떨어진다는 중평”이라면서 “그런 위험이 있다면 나는 컴퓨터 안 쓰겠다”고 단언한다. “최근 쓰는 원고도 다 원고지에 썼고 죽을 때까지 원고지에 쓰겠다.”
아들, 며느리에게도 소설 ‘태백산맥’을 필사시켰다. “매일 하는 사소한 노력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실제로 체험하고 체득하게끔 하고 싶었다”는 이유에서다. “1년 365일 중 쉬는 날 빼고 대략 300일 잡으면 하루 10매씩 베껴 4년이면 다 베낄 수 있다”는 산술적 계산으로 작문의 노고와 기쁨을 간접 경험케 했다.
조씨는 또 다시 글 감옥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지식인층이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해 사회의 장거를 만들면서 아무런 반성 없이 비인간적 행위들을 해나가는 작태를 리얼하고 해학적으로 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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