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고산자’ 대산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김정호의 깊고 슬픈 꿈 그리고 싶었다”

차재호

| 2009-11-03 20:03:10

“젊을 때 상을 많이 못 받아봤지만, 50대가 되니 부끄러움이 추가되고, 60대가 되니까 민망함이 추가되는구나 싶다. 민망하고 부끄럽다.”

소설 ‘고산자’로 제17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는 박범신(63)씨의 소감이다. 젊은 작가들이 문학상을 휩쓸다시피 하는 현 시점 문단에서 “60대로 상을 받는 게 한 편으로는 민망하다”는 그는 “열심히 문학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나이든 작가들이 떠오른다”며 겸양을 보였다.

박씨는 대동여지도를 비롯, 다수의 지도와 전국 지리지를 편찬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1866)의 생애를 담은 소설로 대산문학상을 받는다. “소재와 형식에 도전하는 작가적 태도를 엿볼 수 있었고, 그 시대가 만들어낸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고산자를 정밀하게 그려냈다”는 평이다.

박씨는 “김정호 선생의 육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소설을 썼기 때문에 대산문학상은 저보다 김정호 선생이 받아야 하는데 내가 대리로 받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소설이 인정받는다는 것보다 김정호 선생을 독자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육체로 복원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대동여지도가 뭐냐고 물으면 누구나 안다고 답했지만 그 분의 꿈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면에서 김정호는 유령 같은 사람이었다”는 작가는 김정호의 육신을 소설로 불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꼭 한 번 받아보고 싶었다”는 대산문학상을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이 상은 상업성에 연루된 것도 아니고, 많은 상이 있지만 대상문학상은 언제 한 번 받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소원을 풀었다”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박씨는 “젊을 때는 소설이 내 인생의 목표이고 꿈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소설 자체가 내 목표는 아니었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고 회고하면서 “(소설은) 목표였을 뿐이고 내가 꿈으로 간직했던 건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인 것 같다”고 성찰했다.

고산자에게서도 공통점을 찾았다. “김정호 선생의 꿈도 정확히 지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도 너머에 더 깊은, 슬픈 꿈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발상이었다. “어떤 면에서 소설 고산자는 내 나이의 나 자신을 강력하게 반영한 소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한편, 소설 부문 ‘고산자’ 외에도 송찬호씨의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이광호씨의 ‘익명의 사랑’, 브루스 풀턴 등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There a Petal Silently Falls)’가 제17회 대산문학상 시·평론·번역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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