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미술품 구매와 판매의 심리학
박정수-작가·미술칼럼니스트
김유진
| 2009-12-13 11:04:41
(박정수-작가?미술칼럼니스트)
요즘은 이런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과거에는 미술계에서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최근에 와서야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자리잡아가고 미술시장 자체가 상승 분위기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속이기를 지속할 이유가 없어졌다.
작가의 입장에서 화랑이 전시를 해줄 때 전시장, 화집, 액자, 운송 등등을 다 책임져준다면 굳이 본인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팔 이유가 없다.
전시장 대관료 이외의 모든 비용을 작가가 부담하는 경우에는 본전을 생각해야 했다.
화랑의 입장에서는 작가에게 모든 것을 다 제공하는데 눈치를 보니 작업실에서 작품을 판매할 요량이다.
100만원에 판매하여 50만원을 자기가 갖느니 작업실에서 70만원에 팔면 더 이익이다.
액면가 그대로 판매하면서도 할인해드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정서로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많았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미술시장의 구조를 조금은 설명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 작품, 한 점에 200하는 건 아시죠. 제가 무척 아끼는 작품이거든요. 몇 해 전에 400 주고 두 점을 샀어요. 제가 돈이 급해서 그래요. 두 점에 200만원만 주세요. 한 달 후에도 안 팔리면 30만원 더 주고 가져갈게요.”
거래가 활발한 작가가 아니었지만 안면이 있는 터라 120만원을 주었다.
한 달 후에 30만원 더 주고 찾는다는 말을 믿었다.
오지 않았다.
지금도 그 작품은 화랑에 걸려 있다.
누군가 매입하는 의사만 있다면 바로 팔아버리고 싶다.
미술품은 사치품이 아니다.
그런데도 적절한 강도의 강권과 구매자의 허영기 유도가 필요하다.
구매자 역시 그것을 알면서도 적당히 젠체하고 잘난 척을 한다.
파는 자와 사는 자의 흥정의 심리학을 양측이 적절히 인정해주는 분위기 속에 거래가 진전이 되어 간다.
어느 화가의 작품이 잘나간다 싶으면 화랑에서 먼저 그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려고 설친다.
구매자는 뚜렷한 목적과 자세한 관찰도 없이 사들이려고만 서둔다.
화가는 잘나가는 그 이미지를 별 고민 없이 연작으로 쏟아낸다.
최근에 이르러 화랑이나 기획자들이 화가의 창작에 직접 관여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들의 역할은 아직도 진가를 발휘한다.
화랑에서 진행되는 초대전의 경우, 작가에게 직접 어떤 형태의 작품을 출품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그룹 기획전의 경우에도 일정 정도 형식을 통제할 수 있는 전시 명칭을 붙인 후 화랑주의 입맛에 맞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받아간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작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불만이지만 어쩔 수 없이 참여해서 이미지 확산을 꾀할 수밖에 없다.
알고 가야 한다.
무작정 가더라도 길은 통하게 되어 있지만 현금이 오가는 시장에서는 실패 경험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젊은 미술인들을 위해 작은 관심과 작품 매입에 관심을 가져줄 시점이긴 하지만 무작정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실패를 경험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직한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미술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눈먼 돈 들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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