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 “동화같은 판타지 만들고 싶었다”
한국형 히어로물 ‘전우치’로 초년감독 시절 꿈 이뤄
차재호
| 2009-12-22 19:11:41
판타지 영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토종 판타지물을 완성시켰다. “판타지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는 최동훈(39) 감독의 꿈 ‘전우치’는 ‘범죄의 재구성’(2004)과 ‘타짜’(2006)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실현됐다.
우리나라에서 판타지 장르는 그야말로 판타지다. 높은 제작비에 성공 보장도 없는 까닭에 판타지는 그 자체로 도전이 된다. 제 아무리 최동훈 감독이라도 왜 판타지를 하느냐는 주위의 비관적인 시선은 필연이었다. “안전한 선택은 아니었다”, 감독도 알고 있다.
왜 판타지를 했는가. 최 감독은 간단명료하게 대꾸한다. “재미있잖아요”다. “도술이 등장하는 상상력의 세계를 리얼하게 만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속으로 깔깔깔 하면서 쓴 시나리오”가 전우치였다. “내가 보지 못한 걸 보고 싶은 것이다. 판타지는 그런 욕망이 있다.”
판타지를 향한 짝사랑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부터다. “영화아카데미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꼴찌로 졸업했다”는 감독은 “졸업작품으로 전우치와 유사한 시나리오를 썼는데 통장 잔고가 50만원밖에 없어서 영화를 찍지 못했다”는 한을 전우치로 씻어냈다. ‘삼국유사’ 속 손순매아 이야기가 그 시절 감독이 구상한 단편 판타지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년 시절 경험이 모태일 수 있다. “집이 잘 살지 못해서 책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20권짜리 전집을 사왔다. 책이 그것밖에 없어서 초등학교 6년 내내 그것만 읽었다”는 감독은 그때 읽은 ‘보물섬’, ‘삼총사’와 전래동화 등을 곱씹으며 전우치로 되새김질한다. 그래서 “판타지란 어린 시절 꿈 같은 걸 실현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즐길 줄 알고, 언제나 여유 있는 전우치 캐릭터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한국 사람들과도 닮았다”고 여긴다.
“홍길동이 조직을 이끌고 정부에 맞서다 율도국으로 가는 혁명가라면, 전우치는 풍류를 즐기는 악동에 가깝다”는 것이 감독의 견해다. 서강대 국문과 출신인 감독의 전공이 백분 발휘되는 대목이다.
고전 ‘전우치전’에 기대고 있지만, 영화 전우치는 온전히 최 감독의 상상력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애초부터 강동원을 ‘전우치’, 유해진을 ‘초랭이’ 역으로 염두에 두고 그린 감독의 봉인된 상상력은 전우치로 구현된다.
김윤석, 임수정, 염정아로 이어지는 호화 캐스팅을 가능케한 최 감독의 배우복도 알아줘야 한다.
범죄의재구성과 타짜 등 어두운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촐랑·발랄 전우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최동훈 감독의 행보를 말해준다.
“아직은 여물지도 않았고, 새로운 형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감독의 말마따나 최동훈은 아직까지 스타일을 규정할 수 없는 연출가다. “기회가 되면 SF도 하고 싶고, 범죄영화를 다시 해보고도 싶고, 내 방식의 멜로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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