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박정희 49% vs. 이명박 1.8%
고하승
| 2010-07-07 16:18:19
편집국장 고하승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이는 한국도로공사 류철호 사장이 7일 경부고속도 개통 40주년을 맞아 기념비에 새긴 글이다.
실제 경부고속도로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혜안과 결단, 그의 탁월한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착공, 1970년 7월7일 완공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이한림 건설부장관,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 등과 공사 관계자, 지역주민들은 경부고속도로 완공 개통 테이프를 끊었다.
고속도로의 완공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15시간 이상이 소요됐던 통행시간이 5시간으로 단축됐다. 이로써 전국이 1일 생활권으로 바뀌면서 우리나라의 경제가 비약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특히 고속도로는 ‘물류 혁명’을 이끌면서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고, 전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출발은 쉽지 않았다.
총길이 428km(현재 416km), 총공사비 429억 7300만원, 연인원 892만 명 등 당시로서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대규모 공사다보니,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등 경제부처도 재정파탄 우려가 있다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흔들릴 수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12월 8일 서독(당시 에르하르트 총리)을 방문,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시속 160km를 달려보았다. 그리고 그 도로가 서독 경제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구나 서독 파견 광부와 간호사의 월급을 담보로 1억 5000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약속을 받고, 그 눈물겨운 돈으로 경부고속도 결심을 굳혔기 때문에 이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서독으로 갈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79달러로 필리핀(170달러)과 태국(260달러)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른바 ‘보릿고개’를 밥 먹듯이 경험하고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광부는 모두 7932명이었고, 정부 차원의 간호사 공식 파독이 끝난 1976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간호사는 모두 1만226명이었다.
이들이 독일의 탄광과 병원에서 비 오듯 하는 땀과 눈물을 참아가며 연금과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의 70∼90%를 고스란히 조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던 것이다. 이들의 수입이 1970년대 한국 경제성장의 ‘종자돈’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서독 정부는 이들이 제공할 3년치 노동력과 그에 따라 확보하게 될 노임을 담보로 1억5000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한국 정부에 제공했다.
물론 그 돈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파견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반드시 국가발전을 이룩해야 했고, 그러자면 고속도로 건설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반드시 이룩해 내야할 사업이었다.
결국 그의 꿈은 이루어졌고, 그 꿈이 우리나라를 오늘과 같은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 것이다.
고속도로 건설은 우리국민들로 하여금 박 전 대통령을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실제 창간 20주년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49.0%)을 꼽았다.
그 뒤를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3%, 노무현 전 대통령이 7.9%였다.
반면 현직 이명박 대통령은 1.8%에 불과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존경도는 12·12 군사쿠데타, 5·18 광주학살과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 조성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3.3%)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고, 3.15 부정선거의 주범인 이승만 전 대통령(2.3%) 보다도 낮았다.
다만 김영삼 전 대통령(0.6%)이나 최규하 전 대통령(0.7%)보다는 높은 수준이었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나 국가경제 발전의 공로가 민주화 탄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념관조차 하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총 사업비 709억원 중 209억원은 국고에서 지원하고 나머지 500억원은 기부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부금 모금이 100억원을 겨우 넘기면서 기념관 건립 계획은 8년째 표류 중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나몰라’하는 상황에서 기부금이 제대로 모일 리 없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무관심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이 대통령이 나서면 박정희 기념관을 정말 멋있게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걸 못할까?
어쩌면 시기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절반이 존경을 하는데, 자신은 겨우 100명에 한 두명 만 존경한다고 하는데서 오는 시기심.
그가 ‘4대강 사업’을 ‘고속도로 사업’에 비유하는 발언을 자주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다고 하루아침에 ‘이명박’이 ‘박정희’가 될 수는 없는 것인데, 왜 그걸 모를까.
이 대통령은 49%와 1.8%, 이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