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지자체의 ‘현대판 음서제도’ 우려
고하승
| 2010-09-06 13:39:17
편집국장 고하승
외교통상부가 특채 공모에 지원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이 합격할 수 있도록 노골적인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특별 인사감사를 벌인 행정안전부는 6일 감사 결과 발표를 통해 "외교부가 유 장관 딸이 특채에 응시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장관 딸을 합격시키려고 관계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행안부에 따르면 우선 다섯 명의 면접위원 중 외부 위원 세 명은 유 장관 딸이 아닌 다른 응시생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지만, 면접에 참여한 외교부 간부 두 명은 유 전 장관 딸에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몰아줬다는 것.
심지어 이들은 심사 회의를 할 때도 "실제 근무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등 외교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유 전 장관 딸에게 유리한 쪽으로 심사를 유도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면접 위원을 구성하는 단계에서도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외교부 간부 모 씨가 내부 결재 등 절차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시험위원을 정했다는 것.
특히 작년 이후 시행된 6차례의 특채 중 어학 요건이 네 차례는 '토플과 텝스 또는 우대'로 돼 있었지만 이번 특채에서는 유 전 장관의 딸이 성적표를 제출한 텝스만으로 제한했다.
한마디로 유 전 장관의 딸 합격을 위해 모든 방법이 동원된 셈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례가 중앙정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
실제 전국공무원노조 양성윤 위원장은 이날 “특채 문제는 중앙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양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도 모 자치단체의 경우, 군수의 딸이 자격이 없는데도 자격을 맞춰서 서류전형을 통과시켜서 최종합격을 도운 사례가 있었는가 하면, 모 광역자치단체의 경우에는 도지사의 측근을 4급으로 특채하고 그 특채된 측근의 아들까지도 동반 특채한 경우가 있었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시설관리공단 경우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
실제 서울의 한 구청 시설관리공단의 경우 직원 중 상당수인 37%가 시의원이나 구의원 그리고 정치인, 단체장, 구청, 경찰간부 등 전.현직 유력인사들의 자제나 친척이라고 한다.
또 서울 모 구청의 경우에는 구의회의 상임위원장이 아들을 특채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지난 6.2 지방선거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따라서 지금은 그 구청장의 구청장이 바뀌었고, 구의회 상임위원장도 바뀌었고, 현 구청장이나 구의원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전직 구청장이나 전직 구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한 ‘현대판 음서제도’의 잘못을 수술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현직 구청장이나 현직 구의원들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각 지자체나 지방의회가 특채에 대한 특별감사를 통해 현대판 ‘음서제도’를 발본색원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필요하다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는 공무원 노조를 특채 시험위원에 포함키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대학, 지역 시민단체, 지역 언론 등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로컬거버너스’ 개념을 도입하면 ‘음서제도’의 부활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각 부처에서 시행하는 특채가 '현대판 음서제'라는 특혜시비를 받지 않도록 시험의 객관성을 높이고 특정 개인이 인사나 채용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겠다"고 밝힌 만큼, 누구나 인정할만한 장치가 만들어 지기를 바랄뿐이다.
아울러 각 지방자치단체도 조례 제정 등을 통해 특채가 ‘음서제도’라는 비아냥거림을 받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장치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서민들은 "이제 개천에서 용 나오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한숨을 쉬고 있는 마당이다.
사시·행시·외시 등 고시제도 변화가 결국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도움이 되는 제도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할 것이고, 억눌렸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공정한 사회구현’에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중앙정부가 먼저 ‘음서제도’의 부활을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옳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의 분노가 여권을 향하게 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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