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분권형 개헌 추진은 ‘대국민선전포고’

고하승

| 2010-11-15 14:04:59

편집국장 고하승

예상했던 대로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여권 친이 핵심세력들이 노골적으로 분권형 개헌 ‘불 지피기’에 나섰다.

하지만 차기 여야 유력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모두 ‘분권형 개헌 반대, 4년 중임제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어서 ‘분권형 개헌’이 실제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15일 개헌문제에 대해 대단한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 이 대통령은 이날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개헌을)구상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스타트하고 있었다”면서 조금 더 구체화해서 연내에 분야별로 제시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즉 개헌 문제에 대해 이미 구상을 마치고 그동안 물밑에서 추진해 왔기 때문에, 연내에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만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전날 "G20 정상회의도 끝났으니 한나라당이 개헌 논의를 하지 않겠느냐"며 "특임장관으로서 개헌이 시대적으로 왜 필요한가를 설파할 것"이라고 개헌 전도사 역할에 적극 나설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그는 개헌 방향에 대해 "선진국으로 가고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을 이루려면 나라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정말로 멀리 보면 분권형 대통령제를 해야 한다"고 ‘분권형 대통령제’를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역시 개헌에 대해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앞서 안 대표도 전날 “G20 정상회의가 끝났으니 이제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개헌논의에 불을 지폈다.

단순히 불만 붙인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개헌 논의 공론화를 위한 '3단계 접근법'이라는 걸 제시하기도 했다.

1단계로 22일 한나라당 의원총회를 통해 당의 개헌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2단계로 야당과 협의한 이후 3단계로 국회 차원의 개헌특위를 구성한다는 것.

일단 1단계는 절반쯤 성사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미 한나라당 내 친이계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가 개헌 공론화를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모임 대표인 안경률 의원은 지난 3일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초청, 간담회를 갖고 “국회 특위구성을 통해 여야 간 개헌 토론·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며 곧 개헌론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G20 정상회의 이후 개헌공론화를 위한 ‘몸 풀기’였던 셈이다.

따라서 22일 한나라당 의총에서 개헌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친박계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친박계가 당내 소수파인 점을 감안하면 표결에서 친이계가 승리할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과의 협의가 어디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인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오 장관이나 안상수 대표 등 모두가 ‘별 것 아닌 일’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대체 그동안 개헌과 관련, 물밑에서 어떤 일이 추진되고 있었기에 ‘분권형 개헌론’자들이 이처럼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물론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가 분권형 개헌론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제1 야당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반대하고 있지 않는가.

손 대표의 입장은 ‘4년 중임제’다.

그럼에도 친이 분권형 개헌론자들은 민주당 당론을 분권형 개헌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체 무얼 믿고 그러는 것일까?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사실 민주당 내에도 분권형 개헌론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4월 원내대표 경선 당시 ‘분권형 개헌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운 강봉균 후보가 박지원 후보와 결선투표에 오를 만큼, 많은 지지를 받은바 있다.

어쩌면 친이계와 민주당 일부 세력이 물밑에서 ‘분권형 개헌’에 대해 암묵적으로 손을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걱정이다.

하지만 이는 ‘대국민선전포고’나 다를 바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국민은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이계가 분권형 개헌 공론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선진당과 민주당 일부가 가세한다고 해도 뜻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개헌을 포기하고, 민생을 한번이라도 더 챙기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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