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와 축배

이기명 시사평론가

안은영

| 2010-12-14 16:03:00

“사는 것과 죽는 것, 어느 것이 현명한지는 신만이 안다.”


소크라테스가 최후로 한 말이다. 그는 독배를 마신다. 역사는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는 축배의 노래가 나온다. 더없이 상쾌한 기분 좋은 노래다. 독배를 들고 죽기보다 평생을 축배를 들며 살다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스스로 독배를 마신다. 죽을지도 모르고 독배를 축배처럼 든다.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이다.


예산의 액수는 국민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의미 있는 것은 예산안이 4대강을 위한 것이며 형님 예산을 구겨 넣은 것이며 ‘한식의 세계화’에 거액을 쓰는 것이며 우리 어린 새끼들 예방주사 값을 없앤 것이며 박희태와 송광호와 이주영이 지역구에 생색낼 예산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실세들이 제 배를 채웠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키고 난 다음에 높이 든 축배의 잔 속에는 국민의 혈세 309조567억원이 녹아 있다. 왜 혈세라고 하는지 알 것이다.


여야가 합의했으면서도 날치기로 사라진 예산은 보육시설 미ㆍ이용 아동양육 지원금 2743억원. 그리고 영 유아 필수 예방접종 확대를 위한 국가예방접종확대실시 보조금 338억원이다.


3살 미만의 아기들이 예방주사 맞는데 돈 보태주는 걸 싹둑 잘라먹었다. 보육돌봄 서비스사업 578억원. 산모ㆍ신생아 도우미사업 310억원, 구강건강관리사업 60억원, 생계급여 323억원, 장애가족지원 12억원 등도 사라졌다. 모두 4677억원이다. 어디로 갔나.


‘한식의 세계화’도 좋다. 국위선양이라니까. 이번 예산안에 이명박 대통령 부인이 주도한다는 ‘한식 세계화 예산’으로 242억5000만원을 통과시켰다. 굶는 아이들, 애들 예방접종비. 장애가족지원비 등을 삭감하고 대학생 등록금 장학금 관련예산도 삭감했다. ‘한식 세계화’ 홍보에 쏟아 붓는 한나라당의 몰상식과 부도덕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할지 난감하다.


‘형님 예산’으로 불리는 이상득 관련 예산 증액은 충청도 전체 예산 증액 5억원의 268배에 달한다.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시킨 예산안이 과연 국민을 위한 예산안 심사였는지 국민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은 비록 두려워 말을 못해도 의문은 독배 속에 녹아 남아 있을 것이다.


언론분석은 ‘형님 예산’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조원이 넘는다고 했다. 천문학적 국민 혈세가 이명박 대통령 형제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그냥 아니라고 한마디로 잡아 땔 것인가.


이것이 돈의 문제인가. 개신교가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증오 때문이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봉헌에서부터 봉은사 명진 스님에 대한 안상수의 추방발언 등등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주머니를 짜서 낸 혈세 중에 얼마나 많은 돈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나가듯 소리 없이 사라지는지 잘 안다. 국민은 가슴이 아프다. 예산은 한나라당의 돈이 아니다. 국민의 돈이다. 왜 맘대로 요리하는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을 흐린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별 같지 않은 별들이 별들의 아름다운 빛을 흐리게 했다. 천안함부터 연평도 사태까지 군이 보여 준 모습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국민이 군에 실망하면 어찌 되는가. 아득하다.


국민을 위한 정치에는 임기가 없다. 이미 상실해 버린 대통령의 신뢰다. 신뢰회복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더 이상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 뿐이다.


그들이 마시는 독배가 한 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마시는 독배다. 조금씩 독이 쌓여 국민의 심판을 받는 날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국민에게 준 고통이 모두 독배 속에 녹아 있다. 그날을 바로 심판의 날이라고 하는 것이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