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고하승
요즘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당내 공천개혁특위원장인 그는 지난 14일에 열린 ‘국민지향 공천개혁특위 토론회’에서 참석하는 등 ‘공천개혁’행보에 여념이 없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훈남 오세훈 서울시장이 초선 의원 당시 정치자금법을 바꿔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처럼, 미녀 나경원 최고위원이 공천개혁을 이뤄내 ‘제2의 오세훈이 되려고 한다’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사실 여야 할 것 없이 어느 정당이나 ‘공천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한나라당처럼 특정 집단이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는 정당이라면, ‘공천 개혁’은 더더욱 필요한 작업이다.
따라서 나경원 최고위원이 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선다는 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한 측면이 있다.
현재의 한나라당 당헌.당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대표로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대단히 개혁적이다.
당헌당규대로만 한다면, 사천을 방지하고, 공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정한 공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굳이 특위를 구성할 필요조차 없이 당헌당규를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도 나경원 최고위원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공천개혁’을 운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뭔가 꼼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시사 주간지 <일요신문>은 최근호에서 “주류 ‘이재오-이상득 라인’이 나 최고위원을 앞세워 제2의 공천주도권 전쟁을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고 보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나경원 최고위원의 개혁공천 핵심은 ‘사천을 뿌리 뽑고,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으로, 이 같은 원칙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공천개혁안 가운데 ‘공천심사위원회’를 폐지하고, 대신 ‘공천관리위원회’두어 위원회가 후보들의 적합도를 수치로 매긴다는 방안이 담겨 있다.
현역의원의 경우 ▲교체여부(15%), ▲경쟁력(20%), ▲적합도(15%)를 따져 지역구 활동을 평가하고 그외 의정과 중앙당 활동(50%)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공천 심사의 객관적 기준을 삼겠다고 한다.
그럼 교체여부에 대한 수치를 누가 매기는가. 또 경쟁력이나 적합도에 대한 수치는 누가 산출하는가.
특히 점수가 높은 중앙당 활동에 대한 평가는 누가하고 누가 점수를 매기는가.
현재 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이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은 불 보듯 빤하지 않는가.
이는 오히려 계파안배를 고려해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논의 끝에 후보를 선정하는 방안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한마디로 ‘개혁안’이 아니라 ‘개악(改惡)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다.
공천관리위 구성도 문제다.
당 추천 50%에 공모인사 50%로 돼 있는데, 공모인사 선정은 누가 하는가.
당연히 당 지도부, 즉 친이 주류 측이 하는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당 밖 인사들은 당내 사정을 잘 모를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당내 힘 있는 인사들의 입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들로 인해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가할 후보를 3배수 정도로 추리는 과정에서 친이계가 원하는 인물 위주로 압축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일요신문>은 “오히려 나 최고의 공천개혁을 자신들의 공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활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도했는지도 모른다.
실제 나 최고의 공천개혁안에 대해 친이계 의원들은 대다수 찬성을 표하고 있지만, 지난 18대 총선 공천 당시 ‘대학살’을 당했던 친박계 의원들은 “있는 당헌 당규라도 잘 지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만일 나경원 최고위원의 공천개혁안이 이재오-이상득 라인의 당권 재창출 전초기지로 활용된다면, ‘제 2의 오세훈이 되겠다’는 그의 야무진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정말 ‘공천 개혁’에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나 최고위원은 당장 특위 해체를 선언하고 당 지도부를 향해 “개혁적인 당헌당규나 제대로 지키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하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제2의 오세훈’이 되겠다는 황홀한 꿈에 도취된 그녀가 그런 용단을 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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