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문화평론가)
범람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문화예술에 대한 갖가지 견해, 심지어 철학까지도 쏟아진다. 만약 각 심사위원들의 요구내용들을 다 수용하고 그것을 체화한다면 정말 훌륭한 프로가 될 수 있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문화예술에 정답은 없다. 특히 대중예술은 더욱 더 그러하다. 역동적인 대중의 기호와 취향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답이 없는 분야에서 특정하게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창조력을 죽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21세기 대중문화의 권력은 전문가나 해당 분야의 프로활동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백청강이나 허각이 승리한다고 해도 대중적 수용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파퓰라 컬춰에서 귀감이 되기는 힘들다.
전문가주의는 때로는 권위와 예술의 이름으로 왜곡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인식이다. 아이돌 그룹 출신들은 가창력이 떨어진다거나 자생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뮤지션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또한 여자 아이돌은 모두 과도한 노출을 통해서만 어필하는 존재들이라는 규정이 횡행하기 쉽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아이돌 그룹의 과도한 노출을 금지하겠다는 것도 이와 같은 인식을 공식적으로 확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점은 KBS 2TV <자유선언 토요일-불후의 명곡2>에서 일정정도 증명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예성, 종현, 효린, 요섭, 창민, 지은과 같은 아이돌 그룹 출신의 젊은 가수들이 열창을 하고 있는 점은 충분히 기존의 인식을 바꾸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중적 반응도 예상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가창력을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들에게 아이돌 그룹의 비주얼을 요구할 수는 없듯, 아이돌 출신 가수들에게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가창력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의 생존 콘텐츠가 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가수>의 가수들은 결이 다른 측면이 있다. 노래는 삶의 해석이다. 아무리 가창력이 있다고 해도 20대 초반의 가수와 40대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인생의 경험과 사고의 깊이와 혜안의 폭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노래라고 해도 20대 초반일 때와 40대일 때와 다른 감정 이입이 이루어진다. <나가수>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바로 삶의 체화가 노래경연에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돌 그룹 가수들에게 기획된 상품이라는 평가가 횡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비주얼을 강조한다고 해서 가창력 자체가 없다는 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위대한 탄생>이나 <슈퍼스타 K>도 결국에는 전문가주의에 바탕을 둔 상품화 시스템이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비주얼보다는 가창력 그 자체를 많이 강조하는 것이 약간 다를 뿐이다.
이러한 가창력 강조도 문제가 있다. <위대한 탄생>이나 <슈퍼스타 K>의 한계 가운데 하나는 인생의 결이나 층위가 다른 내용들을 신인들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체험과 연륜이 없는 상태에서 멘토들의 멘토링을 반영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가식이자 위선이며 하나의 ‘포장하기’에 불과해질 수 있다.
프로 가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노래만 불러왔다. 그리고 대중들은 히트한 가요만 요구했다. 리메이크의 권한은 마치 아이돌 가수에게만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나가수>는 이미 프로 가수로 데뷔한 가수들이 다른 사람의 노래에 수십 년 간의 삶의 연륜을 투영, 해석하기 때문에 다른 방송콘텐츠에서는 볼 수 없는 독보적인 면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은 왜 <나가수>의 가수들이 눈물을 흘리는가에 연결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어린 아이돌 가수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영역과 기준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불후의 명곡2>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아이돌과 기성 가수들을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궁극적으로 한국에서 가수들은 노래를 삶의 문제들과 연결시켜 풍부하게 공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무대에서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회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아이돌 가운데 자신의 뮤지션 재능을 키워갈 수 없는 구조는 자가당착이다. 어쩌면, 아이돌을 규제하기 위한 노출금지법을 넘어서 아이돌이 삶의 연륜에 맞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배가 시킬 수 있는 공연과 기획사 시스템 확립에 관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급한 것이다.
지나친 노출이나 립싱크는 결국 자신들의 콘텐츠를 훼손하므로 자동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된다. 그것을 본질로 삼아서 버티는 아이돌 우상은 없다. 인기 그룹은 단순한 비주얼이나 노출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당히 한몫 먹튀 그룹이 아니고서는 그것으로만 승부를 걸지는 않는다.
해당 영역에서 자기 실력을 연배에 따라 배가 할 수 없는 이들이 어디 가수들만 그럴까. 연기력은 더 높아져 가지만 퇴출되어 가는 여자 배우들도 같다. 젊은 여성들로만 채워지는 방송사의 여성 아나운서들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고시합격이나 명문대 혹은 특정 학과 입학, 대기업 취업을 젊은 시절에 이루는 것이 인생을 좌우하는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젊은 시절에 특정한 기회를 잡지 않으면 영원히 퇴출되는 기형적인 사회구조의 모순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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