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고하승
이른바 ‘철강왕’이라 불리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지난 13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박 명예회장은 이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급성 폐손상 치료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타계소식에 전 국민이 안타까워했고, 여야 각 정당도 일제히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한나라당 이두아 원내대변인은 “박 회장은 부국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거인”이라며, “박 회장의 업적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고인이 파란만장한 인생과 영욕의 삶을 살았지만 군인과 기업인·정치인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선진당 문정림 대변인은 “고인이 국무총리로서 국가의 행정과 정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점을 높이 기린다”고 논평했다.
왜, 여야 각 정당이 이처럼 박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일까?
삶의 궤적이 국민의 존경을 받을 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박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포항제철과 현대건설이라는 기업 신화에서 출발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은 너무나 달랐다.
박 명예회장은 평소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다.
실제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1974년 가을 관세법 위반혐의로 가택수색이 진행됐다.
당시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 것도 나온 것이 없었다고 한다. 장롱에는 이불과 옷이 전부였으며 금고에는 집문서와 패물 몇 가지, 그리고 몇 푼의 푼돈만 있었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그는 타계 직전 자비로 병원비를 조달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김명전 장례준비위원회 유족 측 대변인은 "(박 명예회장) 본인 명의로 된 집이나 주식(포스코주식)도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사실 박 회장이 부를 축적하려고 했다면, 그런 기회는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지난 1968년 4월1일 설립된 포스코를 일군 사람은 바로 박태준 회장이다.
이후 포스코는 1988년 6월10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고 3만8058원으로 거래를 시작했으나, 그가 타계하던 지난 13일 종가는 38만9500원으로 시초가와 비교하면 무려 10배 정도나 올랐다.
특히 포스코의 올해 3분기 누적 연결 조강 생산량은 세계 전체 물량의 4.5%에 해당하는 2900만t이다. 연결 매출액은 50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4조40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그가 남긴 재산이 전혀 없다는 것.
유족 측에 따르면 박 회장은 제철소 창업 당시부터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다. 심지어 큰딸의 집에 얹혀살면서 생활비도 자제들의 도움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반면 박 회장처럼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모한 이명박 대통령의 궤적은 어떤가?
아무래도 ‘청렴’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
오히려 기존적인 도덕성마저 부의 축적을 위해 내던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최근 논란이 되었던 내곡동 사저 및 경호실 부지 매입 사건이다.
당시 석연찮은 정황이 드러나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됐었다.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33)씨와 청와대 경호실이 함께 구입한 토지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이씨는 사저 부지를 평당 800만원, 경호실은 평당 660만원에 구입했는데 이는 해당 지역 토지거래 시세인 평당 1,300만~1,500만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구입 직후 해당 필지의 지목이 전광석화와 같이 ‘전(밭)’에서 ‘대지’로 변경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결국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문제가 되자 이를 백지화 시켰지만, 국민들 마음속에는 이미 ‘MB 탐욕’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은 뒤였다.
그나저나 청렴한 박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국민의 행렬을 바라보면서, 이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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