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4.11 총선을 향해 뛰는 사람들 <1>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정치입문 결심”

박규태

| 2012-01-19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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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남자’ 서울 도봉갑에 출사표
[시민일보] 서울 도봉 갑에서 4.11 총선 표밭갈이에 여념이 없는 ‘노무현의 남자’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통합진보당 이백만 예비후보가 바로 그다.

그는 당초 민주당이 아닌 국민참여당을 선택했다가 야권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통합진보당 간판을 달고 이번 총선에 나서게 됐다.

국민참여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대의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던 그는 진보통합당 합류 배경에 대해서는 “세가 약해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보궐선거에서도 실패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세 불리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결국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일부와 손을 잡고 통합진보당을 만든 건 세를 만들어야한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며 “여기에는 ‘정치는 세력으로 하는 거다. 대의만 갖고는 안 된다. 그렇다고 세력만 있다면 깡패집단이 된다. 동시에 갖추는 걸 고민하라’던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가르침이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에서 경제부 담당만 20년 넘게 한 경제 전문기자 출신인 그의 인생 좌표에 처음부터 정치 항목이 들어있었던 건 아니다.

실제로 그 자신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던 그는 태생적으로 정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발탁돼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특별한 정치적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뒤늦게 정치를 하게 된 것에 대해 “후회스럽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이 후보는 “기왕 정치를 하려면 노 대통령께서 정치하라고 권면하셨을 때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후회가 된다. 정치할 마음이 있었다면 특히 청와대에 근무할 때, 그 때부터 준비했어야 했다. 막상 선거에 나서려고 보니 노대통령과 찍은 사진 하나조차 없더라”면서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기왕 정치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사실 청와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변의 참모들에게 적극적으로 정치참여를 권하는 편이었다.
퇴임하는 그에게도 “민주주의에서는 선거에 나가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선출직 공무원이 돼야 한다”면서 2008년 총선 출마를 권면했다.

그러나 정치에 뜻이 없던 그에게는 대통령의 말씀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퇴임 이후 고향인 전남 진도와 목포 등지에서 대학에 출강하거나 지역 활동을 하며 지내는 시간들이 나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적어도 그의 인생관을 180도 바꾼 운명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그의 삶을 바꿨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주군을 떠나보냈다는 미안함이 치솟는 분노와 책임감이 되어 그를 각성시켰고 그로 하여금 정치입문의 뜻을 세우도록 종용한 것이다.

이 후보는 당시를 회상하며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데 나는 목숨은 못 바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해야겠다는 각오로 정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이 후보는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등 몇몇 참여정부 인사들과 함께 국민 참여당 창당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참여당 후보로 도봉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분패하고 말았다.

그는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민주당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는 등 혼신을 다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국민참여당 시절에는 대변인이 되어 열심히 뛰었다.
그러면서 현실 정치인이 되어갔다.

이 후보는 4.11 총선에서의 야권후보 단일화가 갖는 정치적 함의를 강조했다.

이 후보는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가 통합진보당 지도부와 협의를 하겠지만 야권단일화를 통해 1:1구도로 만들면 최소한 민주진보진영이 170석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정도 세력이라면 MB 정권 비리 특검도 가능하고 세상을 진보로 바꿀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후보는 “만약 야권연대가 실패한다면 국민적 저항이 굉장할 것”이라며 “지난 87년 김대중 김영삼 두 분의 후보단일화가 결렬되면서 군사정권이 연장됐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전철을 밟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도봉 갑 지역 출마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도봉구는 태어나서 가장 오랫동안 산 곳”이라며 “결혼 이후 신혼 때부터 줄곧 이 지역에서 살았고 내 아이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내가 덕성여대를 졸업했고 또 그 대학을 일터 삼아 지금까지 근무한(그의 부인은 덕성여재 약대 학장이다) 인연을 생각한다면 도봉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평소 생각이 무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도봉 지역 현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 후보는 “이웃 성북구만 해도 종합대학이 7개나 있는데 우리 도봉구는 덕성여대 하나뿐이다. 한일 병원이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60~70년대 시골 환경을 생각하면 거의 맞다. 그 당시 가장 좋은 건물로 군청, 경찰서, 학교 등 관공서가 꼽혔는데 지금의 도봉구 모습이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도봉구 발전 가능성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니라며 도봉산을 자랑했다.

이 후보는 “서울 북부와 경기 북부를 잇는 관문인 도봉구에는 도봉산이라는 자원이 있다. 무엇보다 공간활용을 통한 문화 창출 등 쾌적한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다”며 “특히 문화시설 확충, 레저시설 확충, 도봉산을 이용한 마케팅, 특히 학교교육 등으로 승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노인들이 쾌적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고, 젊은 부부들이 자기 생활하면서 애들을 훌륭하게 기를 수 있는 교육 공간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면 도봉구가 나름 차별화된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이백만, 그는 누구인가

서울대에 진학할 당시만 그는 법관 아들을 희망하시던 부모님의 부족함 없는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군사정권 말기였던 시대적 환경이 그를 고시공부에 안주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속이고 고시대신 학생운동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법관 대신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모두가 아프던 시절의 얘기다.
그는 나름 정직하게 살기위해 노력해 온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언론인 시절에도 정도를 걷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의 정치 스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홍보수석의 인연으로 대통령과 함께 하면서 조석으로 받은 고급 정치과외가 그 배경이다.
대통령은 틈만 나면 그에게 정치를 가르쳤다.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는 대의와 대세가 중요하다는 것, 갈림길에서는 반드시 역사를 배신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것, 시대정신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 정치의 성공과 실패,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한 얘기를 정치를 모르는 그를 붙잡고 설파했다.

진가를 뒤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그 때의 수업이 정치일선에 나선 그에게 금과옥조 같은 정치적 신념의 울타리가 되고 있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대세보다 대의를 중시한 대통령의 선택이 그를 얼마나 고독하게 옭아맸는지 잘 알고 있지만 같은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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