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만나] 불쌍히 여기는 사람(눅10:25~37)
김우생
| 2012-06-18 11:15:00
불광동성서침례교회 김우생 목사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율법사는 예수님의 질문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에게 “네 말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그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사와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간과의 관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리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마18:18)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몇 가지 인생철학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요 여리고는 세상의 도성을 상징한다고 말하는 성경강해자도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한 여행자는 아주 가파른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도는 여행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도에게 여행하는 사람은 탈취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어떤 해를 가하든지 상관없습니다. 강도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철학이 어디에서 생겼을까요? 사단은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다가 결국 쫓겨나서 사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사단의 철학을 본받은 강도는 사람을 볼 때 무엇을 탈취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가 되던 간에 상관없이 자기의 유익만을 취하는 사람을 ‘강도 같은 놈이다.’라고 말합니다. 압살롬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인 다윗이 그를 그처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의 왕좌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강도 같은 놈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에게 경멸을 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은 종교 혼합주의로 인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생긴 혼혈 종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은 말하기를 사마리아인은 부활이 없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저주하며 지내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한 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의 촌에 들어가셨을 때 사마리아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눅 9:51-56). 그러자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발끈해서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을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지금 불을 내려서 저들을 모두 멸망시키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분개해 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를 경멸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반응한 제자들을 꾸짖으시고는 다른 촌으로 가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을 접대하는 것은 자녀들에게 심판을 쌓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마리아인의 집에서 유대인이 고기를 먹으면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사람의 뼈로 몰래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상극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예수님께서는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으로 사마리아인을 선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강도 만난 사람이 유대인인지는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유대인인 것을 볼 때 아마 강도 만난 사람도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 오직 이 사마리아인만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연민의 정이 있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과는 다릅니다. 또한 강도하고도 너무나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겼습니다.(마15:32) 이 불쌍히 여긴다는 말의 뜻은 사실상‘동참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의 상황에 내가 동참해준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어떤 위험까지도 무릅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신 것 같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동일하게 대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라”(요일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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