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만나] 예수님의 새 식구들(마태복음 12:46-50)
인명진
| 2012-07-15 15:04:00
갈릴리교회 인명진 목사
전통적으로 가정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대가족제도 하에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고모들 우리 형제들 그리고 사촌들까지 20여명이 함께 살았습니다. 식사 때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함께 모이면 3-40명이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전형적인 대가족제도에서 저는 자라났습니다.
그러다가 70년대 산업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대가족제도는 해체되고 소위 핵가족제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요즘 누가 병원에 입원하면 식구들이 간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라도 직장을 그만 두고 부모님을 간병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부부라 할지라도 나이가 들면 간병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부득이 간병인을 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 죽을 때 식구들의 품에 죽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지만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간병인의 품에서 죽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종종 ‘나는 어느 조선족 간병인의 품에서 죽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고 거스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변화의 흐름입니다.
지금도 많은 어른들의 경우 병이 나서 병원에 가면 자식들이 간병하지 않는 것을 섭섭해 합니다. 그러나 병이 났을 때 자식들의 간병을 받는 사람은 어찌 생각해보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식이 일도 하지 않고 간병을 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나날이 죽어 가는데 자식들은 오지 않고 식구들도 없이 낯선 간병인의 손에서 마지막 인생을 맞이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도 제가 살아온 인생이 만만하지 않은데 제가 마지막 인생을 마칠 때 나와 같이 살아왔던 사람들 가운데서가 아니라 제가 누군지 모르는 낯선 간병인의 손에서 시중을 받으며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같은 윤리를 자녀들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남편에게 아내에게 강요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나타나 있는 가족에 대한 생각, 특별히 예수님께서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음으로 가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이었고 어머니는 마리아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고 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에게 4명의 남동생과 누이동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3절에도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에게 부모형제와 가족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주 뜻밖에도 혈연인 자신의 형제들에 대해서 냉정한 태도를 가지셨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에게까지도 말입니다. 세상의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가족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동양의 효를 강조하는 목사님들은 성경의 이 대목은 아마도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절대로 이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족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여기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새로운 식구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라는 말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지금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지금 나와 함께 인생을 사는 사람이 가족이며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며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개념의 가족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을 가족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지금 나와 함께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이 가족입니다. 생각이 같고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이 내 가족인 것입니다. 그들과 가족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비록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나를 낳은 부모라도 같이 살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의 관계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가족입니다. 결국 가족은 지금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같은 생각 같은 목표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가족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혈연관계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함께 살아가는 믿음의 어머니와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 이런 저런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에게 연연하고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로운 식구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새로운 식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새로운 식구로 삼아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나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믿음의 식구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고 형제이고 자식입니다. 혈연을 넘어서 믿음으로 맺어진 나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시대의 진정한 우리의 새로운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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