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당원투표, 뭐가 그리 급한가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3-07-19 14:31:44
편집국장 고하승
민주당이 20일부터 24일까지 닷새간 전체 당원을 상대로 시·군·구청장과 시·군·구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 폐지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한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의 정당공천제 폐지안을 원안대로 의결하고, 이를 전(全)당원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투표권은 최근 1년간 1회 이상 당비를 낸 권리당원으로, 대상자는 14만7128명이며, 투표는 ARS(자동응답전화) 및 문자메시지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전당원투표를 통해 찬반검토위의 폐지안이 가결되면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새누리당과 선거법 개정을 논의하겠다는 것이 민주당 지도부의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 마치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실제 민주당이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전국을 돌면서 공청회를 연 것은 불과 며칠이 되지 않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4일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권고한데 이어 전국 권역별 공청회를 열기로 하고, 지난 15일 호남·제주권을 시작으로 16일 충청권, 17일 영남권에 이어 18일 수도권 공청회를 통해 당론을 모아 왔다.
결국 공청회를 연지 채 일주일도 되기 전에 전당원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짧은 기간에 과연 당원들이 기초선거 공천폐지 문제에 대해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지금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8일 민주당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수도권 공청회'에서 기초자치선거정당공천제찬반검토위원장인 김태일 영남대 교수가 정당공천제 폐지 결론을 소개하면서 대안으로 여성명부제 도입, 정당표방제 도입, 정당별 일괄선거기호제 폐지 등을 제시했으나,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허용은 헌법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따라서 공천을 아예 없애기보다는 공천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최소화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즉 공천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성 시비와 부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가야지, 문제가 있으니 공천제도를 아예 없애자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민주당 공청회에서 “혼인과정에서 부부갈등으로 이혼하는 부부가 많으니 결혼제도를 없애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겠는가.
특히 정당공천제 폐지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사회적 강자를 위한 제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사회적 약자들과 정치신인들의 정치적 진출은 요원해지고, 결국 돈 많고 조직이 큰 지역 토호세력들이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장악하게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공천폐지에 대한 찬성 의견도 상당하다.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정당공천폐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대통령 선거공약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당원들에게 심사숙고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급하게 서둘러 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보면, 거기에 어떤 꼼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실제 지방분권전국연대 박재율 공동대표는 "대선공약에 이어 찬반검토위원회에서 거듭 폐지결론을 도출했음에도 전당원투표제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정당공천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폐지 대선공약 이행촉구 시민행동 준비위원회는 최근 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상당수 의원들이 자신의 공천권한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적인 공천폐지 반대투표를 시도할 개연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필자는 민주당 지도부가 그런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투표 일정이 너무 촉박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행여 너무 촉박한 일정으로 가볍고, 경솔한 결정이 내려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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