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史草) 실종과 교훈
전지명 동국대 겸임교수
전지명
| 2013-07-22 14:23:29
이게 대한민국의 수준이란 말인가!
한 국가의 소중한 역사 기록물 관리기관 국가기록원인 대통령 기록관에 마땅히 보관되어 있어야 할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그것도 엄격한 기록물 관리대상이 되어야 할 일급 비밀 수준의 정상회담 대화록인 이른바 ‘사초(史草)’가 실종되었다. 전무후무한 참 기막힌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야 대화록 열람위원들이 3일째 대통령 기록관에서 집중적인 대화록 재검색과 열람 작업에 나섰지만 흡사 ‘보물 상자’와도 같은 그 대화록 원본은 끝내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시중 일반 물류창고에서도 입출 되는 물품을 차질 없이 찾을 수 있는데, 하물며 국가기관인 국가기록원에서 아직 그 기록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참여정부의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과 국가기록원의 문서 시스템이 서로 달라 기록물 검색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시스템 문제 주장도 일부 제기되고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첨단 관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국가기관에서 보관된 그 기록물을 찾지 못하거나 또 혹여 유실되었다면 이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물론 모든 국민들도 그 대화록이 곧 찾아지길 바라고는 있지만 만일 그것이 유실되었다면 누가, 언제, 왜 그것을 빼돌렸는지 그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야만 할 것이다.
가령 조선시대 왕조실록은 기록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왕이라 하여도 죽을 때까지 자신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록의 자료인 사초를 마음대로 열람할 수도 없었다. 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히 보관·관리해 왔지 않았던가.
그래서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에 걸친 472년의 역사를 1707권에 담겨 있는 그 왕조실록의 가치성이 높이 평가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것을 본 받아 늦었지만 노무현 정부시절에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과한 법률’까지 제정하여 대통령 기록관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 정말 ‘귀신이 곡할 일’도 벌어졌다.
얼마 전 공개되었듯이 국가정보원에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정작 보관되어 있어야 할 대통령 기록관에는 그 대화록이 없다는 것이란다.
추측컨대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이 사안은 다음 두 가지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그 대화록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여정부가 애초부터 아예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곳에 이관은 되었으나 MB정부에서 파기됐을 경우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전자일 확률이 높다는 게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혹시 그런 경우라면 조선시대의 실록기록과 보관에서 알 수 있듯이 사관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기록했고, 또 설사 국왕이라 할지라도 자신에 관한 기록의 유·불리에 대해 손대지 못하게 했던 점을 교훈으로 삼으며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사안에 대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현재로선 그것이 마냥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만약 그 대화록을 누군가가 파기했다면 이는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범죄 인 만큼 철저한 원인규명이 곧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국민의 바람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여러 추측을 깨고 사라진 그 대화록이 속히 발견되어 그와 관련 있는 정쟁이 하루 빨리 종식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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