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판 기욤 사건’으로 비친 ‘이석기 사건’
전지명 동국대 겸임교수
전지명
| 2013-09-05 16:37:34
그렇게도 기승을 부리던 무더운 더위도 이제 한 풀 꺾였다.
서늘하고 선선한 바람이 소시락 거리는 이 가을 문턱에 때 아닌 강하고 세찬 전강풍(全强風)이 몰아치고 있다. 게다가 ‘뇌전(雷電)현상’까지 동반한 이 바람은 가히 전국을 휩쓸고 있다.
그 바람의 중심에 버젓이 서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이석기.
자신이 한 때 몸 담았던 바로 그곳에서 불 체포 특권이 박탈된 그는 내란음모 등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가증스럽게도 자신의 혐의를 정면 부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공세적인 목불인견의 오만한 태도로 국민을 조롱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잖아도 화가 잔뜩 올라 있는 국민들에게 염장을 지르고 있다.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 여의도 이 바람은 문득 동서독 분단 시절의 ‘귄터 기욤 간첩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동서냉전시대이던 39년 전, 서독 수도 본에서 빌리 브란트 총리 정무 비서 귄터 기욤과 그의 부인이 간첩혐의로 체포된다. 알고 보니 그는 바로 브란트 총리 코 밑에서 서독의 극비 정보를 빼내 동독에 넘겨 온 적국의 간첩이었다. 그는 동독 정보국의 지령에 따라 귀순자로 신분을 세탁하고 서독에 위장 망명하여 무려 18년간 간첩으로 암약하다 자택에서 체포되었다.
동ㆍ서독 통일을 대비하며 동독을 포용하려는 동방정책의 기수 브란트 내각은 일시에 기욤 체포 13일 만에 붕괴된다. 이 간첩사건이 밝혀지면서 서독 뿐 아니라 동방정책으로 수혜를 받고 있던 동독도 충격과 혼란에 빠뜨려졌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충격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가 보관하고 있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터져 나왔다. 공개된 파일에 의하면 서독의 각계각층, 심지어 정부와 정보기관까지 수만명의 간첩들이 침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한국 판(版) 기욤 사건’이 드러나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가 국회에 입성할 때부터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지만 국민의 충격과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만큼 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더불어 물밑에서 제2, 제3의 ‘기욤’이 있지는 않은지, 색출해야만 한다.
돌이켜 보면 DJ정부, 노무현 정부 때 남북화해란 명분을 내걸었기에, 국가기관의 공안 업무가 아주 소홀히 되었고, MB정부 때는 그 여파로 역시 유야무야한 사정이었다. 그러니 대략 15여 년간 대공 수사업무가 사실상 실종해 버린 거나 다름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국민세금을 지원받은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그 국민이 살고 있는 체제를 부정하고 위협한다니, 적반하장이 따로 있겠는가.
차제에 그런 정당에 지원하는 정당보조금이나 선거보조금 중단을 위한 규정이나, 더 나아가 이적 단체로 밝혀지는 정당이라면 해체 시킬 수 있는 명문 규정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우리에 비해 통일 전 서독은 자유 민주 체제의 수호를 위해 동독의 공산주의 세력을 비롯한 좌우를 막론하고 극단주의 세력과 사투를 벌였다.
그 당시 브란트는 ‘급진주의자 훈령’을 만들어 ‘동서독 화해와 서독의 자유 민주 질서 수호는 별개의 문제’라면서 헌법 질서 수호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통일 전 동독주민 대부분은 이런 서독의 튼튼한 자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에 크게 영향을 받아 서독 체제로의 편입을 원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분단국인 우리는 이번 기회에 자유 민주체제나 그 근간을 위협하는 범죄를 단호하게 대처 해 온 통일 전 서독의 모습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천둥 치고 비바람 몰아치는 여의도의 그 바람이 언제 미풍으로 바뀔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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