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에 여의도 강변을 거닌 까닭은
홍문종 국회의원
홍문종
| 2013-10-13 17:05:11
한강 고수부지 산책은 여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 누리게 된 호사 중 하나다.
틈만 나면 강변을 거닐 궁리를 하는 내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워낙 걷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른 곳이 아닌 한강이어서 주는 즐거움이 큰 탓이다.
강가를 거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오느라 거칠어진 숨결도 잔잔해지고 번민으로 주름진 마음도 어느 결에 환해진다.
아우슈비츠를 탈출하는 듯한 통쾌함까지 제공되는 가히 묘약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실타래처럼 엉킨 일과에 지친 오늘 같은 날엔 강가를 갈구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오늘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작용한 이유도 있는 듯하다.
그런 배경을 업고 늦은 밤 여의도 강변산책을 결행했다.
편한 복장과 신발로 무장해제를 한 채 익명의 바다에 뛰어드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서강대교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한강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오는데 국회를 등지며 걷기 시작하자 이내 순복음교회 십자가가 시야를 채웠다.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 그 환한 빛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더니 코끝을 간질이며 다가오는 강바람에 밀려나버렸다.
어느 날 흔히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한 장면처럼.
따라붙는 상념을 애써 떨구고 걸음을 옮기자니 나름의 뜻을 담아 ‘현대판 아고라’로 명명해 놓은 강변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내게 있어 각별한 장소다.
납득할 만한 개연성이 충분한 건 아니다. 다만딱 그 곳에 발걸음을 멈추면 내 안의 신명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강바람과의 합체를 통해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 흔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가 설명할 수 있는 전부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포대교는 그 현란한 불빛만으로도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다리를 기점으로 선명하게 엇갈리는 주변 풍경도 이같은 생각을 받쳐준다.
마포대교 이전까지는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기분인데 마포대교를 지나면서부터는 엘지 트윈타워로 대변되는 도회의 소란스러움이 불야성을 이루며 편을 가르는 모습이다.
휘적휘적 걸음을 재촉하니 저 멀리 원효대교가 모습을 드러내다가 이내 희미해졌다.
원효대교는 그 이름이 주는 고즈넉함 때문에 오래된 골동품을 대하는 느낌이었는데 현실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게 되고 말았다. 국내 제일의 위용을 자랑하는 63빌딩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하지만 63빌딩은 기도하는 손을 모델로 삼은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불통의 상징으로 전락되는 위기였다.
실제 늦은 시간 층층이 쏟아지는 불빛들이 여의도 구석구석을 넘나드는 모습은 현대판 바벨탑을 지켜보듯 아슬아슬했다. 휘황찬란한 불빛은 아름답지 않았다. 미완에 그친 인간의 욕망이 조금은 허영스러운 모습으로 기품을 갖추지 못하는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었다.
63빌딩에 다다를 때까지는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출발지로 되돌아 올 때까지도 여전히 비어있는 두 손이 전신의 기운을 뺐다.
자괴감에 천길 만길 늘어지는데 때 마침 울리는 휴대폰 너머 어머니 음성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아이고, 수고 많았다. 얼마나 힘들었니. 이젠 딴 생각 말고 빨리 잠자리에 들도록 하렴”
나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지 알고 계시고 또 이해해 주시는 수호천사 어머니,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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