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무원들, '스토리북' 발간

소외이웃 꿈 담긴 '스토리북'의 기적

김현우

kplock@siminilbo.co.kr | 2013-10-23 15:23:51

▲ 중구청의 '스토리북' 후원과 관련해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주민 모습.

온정기부 물결… 1년반만에 3억원 모아


도움 필요한 1200가구 사연 추려… 9권 발간


전국에서 도움 쇄도… 6400여명 정기후원 동참


타 지방자치단체ㆍ종교단체에서 사업 벤치마킹도


[시민일보]신당종합사회복지관장인 김경하 신부는 홀몸노인 등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9년 동안 운행한 도시락배달 차량이 노후해 지난해 초에 폐차됐기 때문에 1년여 가까이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걸어다니며 도시락을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차를 구입하고 싶지만 빠듯한 복지관 예산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롯데백화점 사회공헌팀장은 중구청에서 '스토리북'이라는 제목의 100쪽짜리 책 한 권을 받았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꿈과 눈물이 담겨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무심히 책장을 넘겼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했다.


다음날 구청 복지지원과로 전화해 신당종합사회복지관을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말 롯데백화점 직원들이 도시락배달 자원봉사를 하며 어려움을 직접 체험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올 2월 롯데쇼핑 대표가 직접 최창식 중구청장을 찾아 롯데백화점 직원들이 모은 후원금 1000만원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그 후원금으로 구입한 차량을 4월 신당복지관에 전달해 1969명의 저소득층에게 따뜻한 도시락을 신속하게 배달하고 있다.


'스토리북'은 중구청과 동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이 지난해 3월부터 만든 책이다.


당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하다가 눈물과 꿈이 담겨있는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후원자들이 그 책을 읽고 후원할 사람을 직접 선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구청을 통해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후원금을 내면 알아서 어려운 사람들과 연결해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후원자가 직접 공감하는 이의의 사연을 읽고 대상자를 정하는 맞춤형으로 후원방법을 변화하기 위해서다.



- 6400여명, 3000~800만원까지 매달 기부
- 책 만든 지 1년반 만에 기부금 3억900만원 모여



지난해 12월 1권이 나왔을 때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잘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스토리북의 힘은 강력했다.


매달 3000~800만원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기업이나 사람의 수가 6400여명이 됐다.


지난 한 달 동안에만 3212만원이 모였고,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 183가구에 지원됐으며 그동안 '스토리북'을 통해 모인 돈은 총 3억900만원이다.


스토리북의 힘은 많은 사람들을 정기 기부자로 만들었다.


신영순씨(62)는 구청에서 받은 보상금 30만원을 후원금으로 내려다 복지지원과에서 '스토리북'을 읽게 됐다.


신씨는 정신분열을 앓고 있으면서도 골수염으로 걷지 못하는 남동생을 돌보며 사는 김 모씨(63)의 사연을 읽고 매달 5만원씩 김씨를 돕고 있다.


영락교회 교인 1004명은 '스토리북'에 사연이 실린 차상위계층 67명에게 매달 502만원을 기부하고 있으며 1년간 6024만원을 후원할 예정이다.


한국전력 서울개발처 직원 178명은 10가구에 월 10만원씩 1년간 1200만원을 지원한다.


롯데백화점 자원봉사단체인 사나사(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직원 1004명도 '스토리북'을 통해 3월부터 하루 100원씩 1계좌(월 3000원)에서 10계좌까지 신청해 매달 411만원을 후원하고 있다.


- 쪽방 작은 문을 여는 배달차량 시동


▲ 지난 8일 국민은행 중앙지역본부로부터 후원받은 배달차량 제막식에 참여한 최창식 중구청장과 임승득 국민은행 중앙지역본부장 모습.

국민은행 중앙지역본부는 '스토리북'에 실린 사연을 보고 2360만원을 후원해 남대문지역상담센터의 남대문 쪽방촌에 배달차량을 지난 8일 지원했다.


그동안 2001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기증받은 9인승 차량을 이용해 쪽방촌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주거나 물리치료사가 동승해 거동 불편자들에게 도움을 줘왔다.


13년 동안 운행하면서 차량 내ㆍ외부가 파손되거나 마모되는 등 심한 노후화로 폐차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나 이러한 사연을 중구 '스토리북'에서 접한 국민은행 중앙지역본부에서 새로운 배달차량을 후원하기로 한 것이다.


구는 이런 고마움을 전하고자 차량에 '이 차량은 국민은행에서 중구의 저소득 이웃을 위하여 지원한 차량입니다'라는 안내문구를 부착했다.


특히 '스토리북'을 본 수원의 삼성전자 사회공헌팀 직원이 택시를 타고 중구에 와 책에 실린 사연의 가구를 방문한 뒤 후원을 준비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외에 SK건설, 빙그레, 신한은행, 신라호텔 등 중구에 있는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도 '스토리북'을 본 뒤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이처럼 '스토리북'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송파구와 인천시, 대전시 서구, 대구시 수성구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종교단체 등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최근에는 총리실에서도 연락이 와 '스토리북' 사업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스토리북은 지금까지 9권에 900명의 사연을 담았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실태를 조사한 저소득층 중 지원이 꼭 필요한 1200여가구의 사연을 추렸다.


최 청장은 "우리 주변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막막한 이웃들이 많다"며 "스토리북을 통해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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