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폐지 문제 전략적 접근 우려
고하승
| 2013-11-25 16:36:42
민주당이 최근 지방선거에서의 시군구 기초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이미 꺼진 불씨를 되살려 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실 민주당은 기초선거에서의 공천폐지 문제를 지난 7월 24일 전당원 투표를 통해 ‘찬성당론’으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그 이후에 이 같은 당론을 추진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실제 그동안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 문제를 논의해 온 국회 정치쇄신특위가 지난 9월 30일 아무런 결론 없이 활동이 종료될 때에도 민주당 지도부는 특위활동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조차 표명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미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공천폐지 문제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고, 그렇게 불씨는 식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 민주당이 부쩍 이 문제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지난 24일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공천제 폐지가 포함됐던 만큼 공약 이행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라며 연일 공세를 펴는가 하면, 전병헌 원내대표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결성해 지방선거 관련 규칙을 조속히 확정해야 한다"며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미 꺼져 버린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안철수 신당 창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 아직 창당도 되지 않은 안철수 신당에게도 크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1월 셋째 주 주간집계에서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이 44.1%, 안철수 신당이 23.8%, 민주당은 16.0%를 기록했다. 이 조사는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다. 민주당과 신당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를 한참 벗어난 것이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47.3%, 안철수 신당은 23.5%, 민주당은 13.7% 순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지난 18일 저녁 전국 19세 이상 남녀 ,372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64%p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뒤늦게 ‘정당공천폐지론’ 카드를 들고 나선 것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지방선거에서 부담을 덜고자 하는 지도부의 꼼수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즉 정당공천이 폐지될 경우 김한길·전병헌 지도부는 기초 단체장 및 기초의원의 선거 결과에 따른 정치적 책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사실 기초단위 선거에서의 공천폐지 문제는 어느 당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향후 100년 앞날이 걸린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천제가 폐지 됐을 때 예상되는 무수히 많은 문제들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고,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내년 지방선거가 아니라 그 다음에 공천폐지를 실시해도 되는 일이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지적처럼 설익은 밥을 국민께 내놓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안 의원은 지난해 대선 당시 기초공천 전면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난 8월 입장을 바꿔,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에 한해 정당공천을 폐지해보고 성공여부에 따라 차기부터 기초단체장 선거까지 확대적용하자는 이른바 '단계적 폐지' 방안을 제시했다.
아마도 신당이 창당되더라도 당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기초의회 단위까지 후보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입장을 밝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얼마나 무책임한 발언인가. 제도를 바꿔 시행해보고 잘 되면, 그 때가서 기초단체장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만일 잘 못됐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가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것인가. 그렇게 해서 초래될 혼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공천폐지 논의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장 적용하기 어렵더라도 예상되는 모든 문제를 검토하고, 확실한 대안을 마련한 후 2018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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