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폐지 논의 신중해야 한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13-12-04 17:41:01
민주당이 4일 지방선거에서의 시군구 기초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날 여야가 국회 내에 정치개혁 특위(정개특위)를 구성해 내년 1월 31일까지 가동하기로 합의하자 민주당이 이날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전에 시군구 기초의원·기초자치단체장 선거 정당공천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며 새누리당의 협조를 재차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현안논평에서 "내년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여전히 지방선거의 룰이 마련되지 않고 있어 여러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국민과 약속했던 기초공천폐지가 도입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혼란의 책임은 모두 새누리당에 있다. 국정운영의 책임을 져야 할 정부여당이면서 법 개정 논의는커녕 아직까지 당론 확정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공세를 취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아주 신중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이날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개특위에서 공천폐지 문재가 논의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하면서도 ‘이번 지방선거부터 공천폐지가 실현이 되는 거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또 공천폐지 문제를 뒤늦게 서두르는 민주당을 향해 “설익은 밥을 국민께 내놓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천제가 폐지 됐을 때 예상되는 무수히 많은 문제들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고,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내년 지방선거가 아니라 그 다음에 공천폐지를 실시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공천폐지 공약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조건 공천폐지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천을 폐지했을 경우 예상되는 문제들, 이를테면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진출은 요원해지고 돈 많고 조직이 큰 지역 토호세력들이 지방의회를 장악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빤한데 이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또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 배제는 이미 위헌 판결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특히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정치의 근간을 부정하고 풀뿌리 생활정치에 대한 정당의 역할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이 확실하게 마련된 뒤에 공천을 폐지해도 될 일 아닌가.
꼭 내년 지방선거부터가 아니라 확신한 대안을 마련한 후인 2018년 지방선거부터 정당공천을 폐지한다고 해도 박 대통령은 공약을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더 바람직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민주당이 뒤늦게 ‘설익은 밥을 내 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민주당은 기초선거에서의 공천폐지 문제를 지난 7월 24일 전당원 투표를 통해 ‘찬성당론’으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그 이후에 이 같은 당론을 추진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미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공천폐지 문제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고, 그렇게 공천폐지 논의의 불씨는 싸늘하게 식어 버리고 말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문제를 재점화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지방선거에서의 완패를 우려한 때문인 것 같다.
실제 최근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 아직 창당도 되지 않은 안철수 신당에게도 크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뒤늦게 ‘정당공천폐지론’ 카드를 들고 나선 것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지방선거에서 부담을 덜고자 하는 지도부의 꼼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지방자치 100년 대계가 걸린 이 문제를 그렇게 정략적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공천폐지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완벽한 대안을 마련한 후 실시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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