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無공천 회담’ 제의 문제 있다.
고하승
| 2014-03-30 15:37:58
편집국장 고하승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30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장외 여론전에 나섰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이날 서울역사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 범국민 서명운동'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기초공천 폐지에 대한 침묵을 비판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했다.
특히 안철수 공동대표는 "기초공천 무공천은 지난 대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사항이었던 정치개혁 관련 공약이었고 무엇보다 국회의원 기득권을 내려놓는 가장 중요한 공약이기도 했다"며 "이 문제는 야당의 공약이 아니고 대통령이 하신 공약이기 때문에 더욱 설명이 필요하다"고 박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회담을 제의했다.
김한길 공동대표와 함께 통합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이끄는 안 대표가 이날 단독으로 회견에 나서 박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의한 것은 이번 지방선거를 '박근혜 대 안철수 구도'로 끌고 가기 위한 포석일 것이다.
그러나 안 의원의 ‘기초공천 폐지 회담제의’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사실 정당공천 폐지는 맹점이 너무나 많다. 먼저 정당공천은 하지 않더라도 정당 표방은 금지할 수가 없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기초의원선거 정당표방 금지'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당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며,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이로 인해 정당이 무공천을 하더라도 후보들이 정당 표방하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을 하지 않았음에도 어느 특정인이, 그것도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인 특정인이 새정치연합을 표방하고 나서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세상에 이런 무책임한 정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
정당이 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는다면 ‘정당의 책임정치’는 실종되고 말 것이다.
현행 선거법상 14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선거기간 동안 유권자들은 6∼7개의 공직 선출을 위해 12∼30명의 후보를 검토하고 투표를 결정해야 한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권자들은 정당을 보고 후보들에게 표를 주는 것이다.
만일 어느 정당 소속 기초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잘못하거나 최근 은평구의원들처럼 이른바 ‘먹튀’를 했을 때, 그들을 공천한 정당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당은 후보들을 공천할 때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유권자들은 그런 정당을 믿고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소속 의원들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정치적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것인가.
따라서 안 의원의 무공천 결정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실 안철수 공동대표의 무공천 결정은 ‘지독한 정치 혐오증’의 산물에 불과하다.
단지 정치를 싫어하는 대중의 심리에 기대에 표를 얻으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뜻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무공천제 보다는 공천제가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단정할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반면 공천제가 바람직하다는 근거는 무수히 많다. 여성, 장애인 정치신인 등과 같은 약자에게 정계진출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제도가 바로 공천제다. 전문성을 지닌 인재들을 비례대표로 등용해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질을 높일 수도 있다. 유권자들에게 검증된 후보들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점도 공천제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훌륭한 장점을 지닌 공천제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공천과정에서 나타나는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
그런데도 안 의원은 마치 ‘무공천=새정치’라도 되는 양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무공천은 정당책임 정치에 반(反)하는 것으로, ‘지독한 정치 혐오증’의 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안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기초공천 폐지 회담을 제의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박 대통령에게 ‘정치혐오’ 대열에 동참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지도자라면 대중이 왜 정치를 그토록 불신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그런 방안을 연구하고 올바른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 정치 불신에 편승해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부채질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안 의원에게 필요한 것은 박 대통령과의 회담이 아니라 성급한 무공천 결정을 사과하고, 이를 철회하겠다는 공식선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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