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후보 vs. 세월호 선장

고하승

| 2014-05-29 15:17:31

편집국장 고하승


이른바 ‘무상농약급식’ 문제가 서울시장 선거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서울시 내부문건이 29일 공개됐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측은 이날 '친환경무상급식 분야 숙의 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시 교육협력국이 작년 12월에 작성한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박 후보는 시장 재임시절인 작년 12월 26일, 당시 행정1부시장, 정책특보, 정무보좌관, 배옥병 희망먹거리네트워크 대표, 이병호 농수산식품공사 사장 등 11명을 시장실에 불러들여 무상급식 대책을 논의했다.

문건을 보면 당시 회의에서는 △감사원 감사 지적사항에 대한 조치 및 대응방안 △센터의 식재료 안전성검사 및 학교 공급가격 결정 △학교급식 식재료 배송업체 등 선정관리실태 등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기록됐으며, 특히 박 후보는 당시 시장 자격으로 회의 마지막에 10분 가량 총평을 한 것으로 명시됐다.

그렇다면 감사원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지 못해 몰랐다는 박 후보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라는 것 아닌가.

그동안 박 후보는 TV 토론회에 나와 '농약이 검출된 식자재는 전량 폐기됐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었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27일 ‘무상농약 급식,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박 후보가 사실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었다. 설마하니 그래도 시민운동을 했다는 박 후보가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박 후보는 전날 오전 방송기자클럽 토론회가 열릴 때만 해도 "서울시는 부적합한 농산물이 식탁에 오르지 않도록 이중 삼중 감시체계를 갖추고, 하고 있다"라며 '농약급식' 의혹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 갑작스럽게 박 후보 측은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를 거쳐 학교에 납품된 식자재 중 잔류 농약이 있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토록 완강하게 "농약급식은 없다"던 당초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실제 박원순 후보 캠프의 진성준 캠프 대변인은 “(잔류농약 검출 식자재 납품) 내용이 감사 결과보고서에 각주로 표기돼 있었다”며 “감사원 감사결과를 정밀하게 검토했지만 신속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박 후보는 오늘(28일) 토론회에 임할 때도 이를 정확히 보고받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이게 무슨 뜻인가.

감사 결과보고서에 잔류농약 검출 식자재 납품 사실이 ‘각주’로 작게 표기돼 있어서 잘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다는 것이고, 박 후보가 토론회에서 "농약급식은 없다"고 한 말은 ‘의도된 거짓’이 아니라, 정확히 보고 받지 못한데서 비롯된 ‘실수’라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러면 작년 12월에 작성된 ‘친환경무상급식 분야 숙의 계획’ 문건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박 후보가 직접 주요 측근들은 시장실에 불러들여 회의를 했고, 나중에 10분 가량 총평까지 한 것으로 돼 있지 않는가. 따라서 ‘잔류농약 검출 식자재 납품’ 사실을 몰랐다는 박 후보의 말은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의 어린 자녀들의 식탁에 잔류농약이 검출된 식자재가 사용됐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박 후보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박 후보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신뢰가 깨지고 말았으며,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말았다. ‘농약급식’에서 검출된 농약성분이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 잠재적인 위험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금 감사원 결과를 보면, 서울지역 초·중·고교 867개 학교 가운데 2011년부터 금년 5월까지 총 24곳의 학교급식에서 농약이 검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 24개 학교를 구체적으로 밝혀줘야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든 뭐를 하든 조치를 취할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농약이 검출된 24곳 외에 나머지 학교에서도 농약이 검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농약이 검출된 식자재를 납품한 업체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 업체로부터 식자재를 납품 받은 학교가 어디인지를 공개하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선거승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했다면, 일부 용서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우리 자녀들이 위험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감추고 ‘쉬쉬’한다면 누가 그것을 용서하겠는가.

박 시장의 모습이 마치 세월호 침몰 당시 자기 혼자 살겠다고 단원고 학생 등 승객들을 외면한 세월호 선장의 모습과 닮은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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