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 전대 후보들, 선진화법 개정 약속하라
고하승
| 2014-06-11 16:00:40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생명으로 한다. 민의(民意)가 최대한 반영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것은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반(反)민주 악법(惡法)’이다.
필자가 그동안 수차에 걸쳐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하고, 대신 국회폭력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칼럼을 게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야 각 정당의 지도부는 필자의 이런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새누리당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드디어 1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몸싸움 없는 국회를 위해 만들어진 국회 선진화법은 폭력국회를 방지한 성과를 거뒀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시급하고 꼭 필요한 법률안의 발목을 잡았다"며 "다수결 원칙의 위배와 일하는 국회에 걸림돌이 되어 개혁의 대상이 됐다"고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비록 때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국회선진화법의 문제를 깨닫고 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대 국회는 해마다 쟁점 법안과 예산안 처리를 두고 되풀이 해 온 여야의 물리적 충돌 방지를 위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선진화법을 제정했다.
당시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법률안 강행처리와 폭력국회를 막겠다는 의도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한 제한과 재적의원의 5분의 3이상 동의 시 신속처리법안 지정, 필리버스터 제도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국회는 이 법이 국회개혁과 의회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선진화법은 이미 ‘식물국회’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며, 심지어 ‘국회 마비법’이라는 달갑지 않은 오명이 따라 붙기도 했다. ‘법률상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과반수의석을 가진 정당이 제출한 법안이라고 해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적은 의석의 정당이 반대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든 법안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야당은 방송법 하나만을 위해 원자력방호방재법 등 100개가 넘는 법안을 인질잡고 있는 것을 비롯해 걸핏하면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정쟁몰이를 하기도 했었다.따라서 이완구 원내대표가 선진화법 개정의지를 피력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새누리당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 2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원 60%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법안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국회 선진화법’은 문제”라며 “가능한 개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려되는 부분은 7.14 당 대표 경선에 나선 김무성, 서청원 의원 등 유력인사들이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무성 의원을 지지하고 있는 김성태 의원은 당내의 선진화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당론이 아니다”라며 반대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서청원 의원 같은 경우는 국회선진화법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지금은 여당이 갑이 아니라 야당이 갑”이라며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어떻게든 대화해야 한다. 여야 간 소통을 놓지 않고 대화를 통해 새누리당이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날 당권도전의사를 공식화한 이인제 의원이 35개의 개혁방안 중 하나로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언급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사실 새누리당 유력 당권주자들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경선과정에서 가급적 야당의 비판을 피해가겠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비주류인 정의화 의원이 주류인 황우여 전 대표를 꺾고 19대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이면에 ‘국회선진화법’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정 의원은 147표 중 101표를 득표, 유력후보로 꼽혔던 황 전 대표를 압도적인 표차로 제쳤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새누리당 초선·비주류의 반란 및 여권 권력지형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를 했으나, 그보다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불만이 표심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 황 전 대표가 원내대표 시절 국회통과를 주도했던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정 의원은 당시 정견발표에서 “국회선진화법은 대의민주주의 원칙인 재적 과반수 결정을 훼손하는 중대한 잘못”이라며 “보완법과 원내 규칙을 만들어 최선을 다해 선진화법 부작용을 막겠다”고 강조해 박수를 받았다.
이번 전당대회 역시 마찬가지다. 식물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 선진화법 개정의지를 밝히는 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을까?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