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선진화법 ‘헌소카드’ 환영한다
고하승
| 2014-09-02 14:52:08
올해 정기국회가 시작됐지만 여야가 의사일정도 합의하지 못한 채 '개점휴업' 상태가 빚어지고 말았다. 사실상 ‘식물국회’나 다름 없는 것이다.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과 민생 법안 등 각종 법안 처리가 줄줄이 지연되고,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 차질까지 우려되지만 국회선진화법 체제 하에서는 여야 합의가 없는 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국회 선진화법은 여야간 이견이 있는 법안의 경우 재적 의원의 3분의2 이상의 동의가 없으면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야당의 동의 없이는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선진화법을 ‘식물국회법’이라거나 ‘국회마비법’이라고 부르겠는가.
실제 새정치민주연합은 각종 민생법안을 세월호 특별법 처리와 묶어서 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즉 세월호 특별법이 재협상되지 않으면 그 어떤 다른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국회는 지난 5월 임시회 이후 8월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리 요청한 19개 법안도 선진화법에 따라 사실상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식의 발목잡기가 가능한 것은 바로 선진화법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생명으로 한다. 민의가 최대한 반영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진화법은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반(反)민주 악법(惡法)’으로 ‘법률상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과반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제출한 법안이라고 해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적은 의석의 정당이 반대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든 법안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아마 OECD 가입국 중에 이런 식으로 국회에 제동을 거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오죽하면 박찬종 변호사가 선진화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창피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겠는가.
필자가 지난 달 13일 <국회선진화법은 ‘식물 국회법’이다>라는 제하(題下)의 칼럼에서 선진화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뒤늦게나마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헌법소원 청구' 카드를 꺼내들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실제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가 야당의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헌법소원 등의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소하려는 준비를 대부분 마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저는 국회선진화법이란 표현 자체도 마뜩치 않게 생각한다. 제대로 말하면 국회무력화법"이라며 "국회선진화법의 헌법적 문제를 전문가 법률 검토를 다 해 놨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교섭단체 대표간의 합의가 없으면 한 발짝도 못나가게 하는 국회법 조항들은 헌법 49조 내지는 여러 가지 헌법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어떤 수단으로 갈 것인지의 문제 정도만 남아있고 대부분 준비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완구 원내대표 역시 "15,16대에서 여러 가지 어려울 때도 법안만큼은 집권여당이 책임지고 통과시켰는데 선진화법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며 "동물 국회를 지양하고 합리적 국회를 만드는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법안 처리 하나도 못하고 이렇게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고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발(發) 선진화법 개정론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이 문제다.
새정치연합 우원식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을 위헌이라고 하는 것은 헌법 위에 군림하는 새누리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적 모습"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박지원 의원도 "독재적 발상으로 국회를 지배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새누리당의 선진화법 개정움직을 성토했다.
과연, 새정치연합의 이런 태도가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다.
그동안 야당은 각종 선거 때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필요성을 앞세워 ‘야권연대’를 추진해 왔다. 그런 정당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에 반하는 ‘반민주 악법’을 옹호하고 나선다면, 그것은 이율배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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