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세월호당’이 있었나?
고하승
| 2014-09-30 12:48:19
국회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의원을 통상 원내대표라고 한다.
국회 교섭단체란 일반적으로 동일정당소속의 의원들로 구성되는 원내정치단체를 말한다. 교섭단체의 존재목적은 국회에서 일정한 정당에 속하는 의원들의 의사를 사전에 종합·통일해 각 정당 간에 교섭창구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국회의 의사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는 데 있다.
국회법상 교섭단체로서 실질적으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대표의원을 선임하고 그 대표의원은 소속의원이 연서·날인한 명부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 때 '대표의원'이란 그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의원, 즉 원내대표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정당이나 교섭단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법 제33조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국회에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만 교섭단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만 국회 교섭단체로 등록 되어 있고, 그 정당의 원내대표가 정치현안에 대해 교섭창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등 소수 정당에도 원내대표라는 직함이 있지만, 교섭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현직 의원들을 거느리고 있음에도 협상 자리에 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30일 정말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여야 원내대표가 협상하는 자리에 ‘제 3자’가 함께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오전 11시 국회에서 만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 전명선 세월호 유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참여했다.
제 3당인 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 원내대표가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장이 여야 원내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협상에 나선 것이다. 마치 전명선 위원장이 ‘세월호당’ 원내대표가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건 아니다.
우리 국민이 언제 세월호 유가족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 준 적이 있던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 대표로 하여금 국회 내에서 교섭단체의 원내대표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자격을 감히 누가 부여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런 권한이 없다. 야당 대표는 물론 여당 대표나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권한을 부여할 수 없다. 오직 국민만이 선거를 통해 그런 권한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세월호당을 만들어서 차기 총선에 유가족 후보들을 내고 원내 20석 이상을 확보하지 않는 한 그런 자격은 절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 협상 자리에 ‘제 3자’가 참여하도록 한 것은 대단히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으로 옳지 않다.
단지 참관자라면 모르되 제3자가 국회교섭단체 원내대표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별도의 안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잘못된 일이다.
자신들이 하고픈 주장이 있다면 여당이나 야당과 만나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의견이 관철되도록 노력해야지 직접 국회 교섭단체와 협상주체가 되어 나서는 것은 국회법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저희는 유가족과 협상하는 게 아니다”면서 “저는 박영선 원내대표와 협상하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에 (권한을) 위임해 달라”고 말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전명선 유가족대책위원장이 "최소한 우리가 요청하는 내용을 가지고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야 하므로 유가족의 전권을 위임해 주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함에 따라 공개 인사 자리에서만 설전(舌戰)이 30분 넘게 이어졌다고 하니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다.
즉 자신들이 요청하는 법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야당 원내대표에게 전권을 넘길 수 없으니, 자신이 세월호 유가족을 대표하는 원내대표 자격으로 직접 협상을 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참 가관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은 이해되지만 이건 과욕이다.
만일 국회가 이를 수용한다면, 여야 원내대표와 유가족대책위가 함께한 자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과정과 절차에 대한 오류는 정당사에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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