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세 칼럼] 고령자는 소모품이다
오현세
| 2014-10-23 16:21:29
결국 엄마 역, 할머니 역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남자 배우들은 활동의 폭이 훨씬 넓다. 세상사가 아직은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가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나이든 배역을 맡아 그 나이에 어울리는 연기를 펼치는 여배우들과 달리 남자 배우들은 아직도 자신은 젊다고 기를 쓰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기본적으로 남자들은 좀처럼 철이 들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이런 노배우들이 팀을 이뤄 만든 허리우드 영화가 근자에 부쩍 눈에 뜨인다. 재작년에는 스탠드업 가이즈(멋진 녀석들)이, 작년에는 그루지 매치와 라스트베가스란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스탠드업 가이즈는 알 파치노(40년생), 크리스토퍼 월켄(43년생), 앨런 아킨(34년생) 세 주인공이 하루 동안 자유로운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의 오락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 개봉 당시 배우들의 나이를 보니 앨런 아킨이 무려 78세, 세 배우 평균이 73세다. 그루지 매치는 왕년의 두 복싱 라이벌이 나이 들어 재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의 영화다.
주인공으로 실베스터 스탤론(46년생)과 로버트 드 니로(43년 생)가 나오는데 평균연령이 68.5세. 늘어진 근육이 연민을 자아내지만 두 배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 보러오는 팬들 얼마든지 있다고 자신만만하다. 딸 같은 여자와 재혼하는 친구를 위해 왕년의 절친들이 만나 여행을 떠나는 라스트베가스의 주연은 로버트 드 니로, 마이클 더글라스(44년생), 모건 프리먼(37년 생), 캘빈 클라인(42년 생), 평균연령 71세다.
금년 개봉작 가운데 익스펜더블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 때문에 세 번이나 놀랐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기라성 같은 액션배우가 총망라되어 있어 깜짝 놀랐고 영화를 본 후에는 이렇게 엉성한 영화가 또 있나싶어 놀랐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실베스터 스탤론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로키와 람보로 대표되는 액션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 지, 무엇을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지 아주 잘 아는 배우다. 록키의 대본을 3일 만에 쓴 그를 왜 사람들이 천재라고 부르지 않는지 개인적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맡는 역은 일관되게 좀 아둔하고 순진한 근육질의 남자다. 도무지 머리를 쓸 줄 아는 역할로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몸짱으로만 본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남자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왜 대중의 환상을 깨야하는가?” 참으로 천재답다.
록키 (1976)의 발보아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환상이 아님을 사람들에게 믿게 만들고 람보(1978)를 통해 베트남전 이후의 방황하는 세대를 정조준 했던 그다. 1946년생으로 올해 만 68세, 말 그대로 낼모레 칠순 할배다. 그가 스토리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공동작업해 만든 영화가 바로 금년에 개봉한 익스펜더블이다.
이 영화를 보면 총 쏘고 주먹질하는 배역을 맡았던 배우는 주, 조연급을 가리지 않고 거의 다 나온다. 멜 깁슨, 제이슨 스타뎀, 해리슨 포드, 아놀드 슈바르체네거, 웨슬리 스나입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돌프 룬드그렌, 이연걸 까지 등장하는데 여기에 격투기계의 전설 랜디 커투어와 여자 격투가로 현재 유에프씨 최대 아이콘인 론다 로우지까지 등장한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우리 한판 걸지게 놀아보자 작심하고 불러 모았다. 영화는 예술?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스토리를 위해 배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가 한 대목씩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스토리를 전개시킨다. 제목 자체가 “익스펜더블”, 소모품이다. 영화 내용으로 보면 캐릭터들이 소모품이란 개념으로 쓰였지만 영화자체가 완벽한 소모품이다. 멍청한 눈꺼풀로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실룩거리는 입술 사이로 이 천재가 내밀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우리들은 이제 소모품이다. 아니 한 번도 소모품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았는가?”
자니 윤도 이런 영화 하나 만들면 어떤가? 나이듦을 경험해 보지도 않은 사람이 그 나이면 집에서 구들장이나 지고 있지 뭐 하러 나와 돌아다니느냐는 기도 안차는 소리에 당신보다 내가 팔굽혀펴기 더 많이 한다는 따위의 개그를 할 것이 아니라 “일도 안하면서 국민의 돈으로 월급을 받아가는 당신보다는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다“ 뭐 이런 정도는 대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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