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이재오, ‘분권형 개헌’ 손잡나
고하승
| 2014-11-02 14:15:53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중국 '상하이발 개헌론'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블랙홀’ 우려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친이계 맏형 격인 이재오 의원이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여권 내부에선 사실상 소멸된 개헌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고 나선 것이다.
실제 이 의원은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과 함께 지난 31일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 등과 비공개로 만나 정기국회 이후 개헌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고 한다.
특히 이 의원은 그 자리에서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추진, 국회 차원에서 개헌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참석자들 모두가 이에 동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모인 여야 4인방은 모두 ‘분권형 개헌론’자들이다.
분권형 개헌론자들은 한결같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국회의원들이 자기들끼리 권력을 나눠먹겠다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한길리서치>가 지난 17~18일 이틀간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권력구조와 관련해 질문한 결과, 4년 임기 대통령 중임제에 대한 선호도가 35.9%로 가장 높았고,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가 26.3%였다. 즉 대통령제 선호도가 62.2%로 크게 높게 나타난 것이다.
반면에 분권형 개헌론자들이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17.9%), 의원내각제(6.5%)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는 크게 낮았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따라서 국회차원에서 제아무리 떠들어대고 여야 일부세력이 밀실에서 합의를 한다고 해도 마지막 관문인 국민투표를 통과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개헌논의로 정국만 혼란에 빠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분권형개헌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먼저 당시 자리에 참석한 정치인들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과 이군현 사무총장은 모두 친이계 핵심인사로 김무성 체제 출범이후 목소리가 커졌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원혜영 위원장은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따라서 친이계와 친노계가 분권형 개헌을 위해 손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들이 분권형 개헌을 위해 손을 잡는다는 것은 곧 친이계와 친노계에서 당선 가능한 대권주자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 친이계가 지원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지지율이나 친노계 대부 격인 문재인 의원의 지지율은 형편없이 낮다. 결국 국민투표에 의해 권력을 장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두 세력이 분권형 개헌을 통해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전권을 갖도록 하고, 나머지 권력은 적당히 배분하자는 속셈이 깔려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새정치연합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과연 이들과 한배를 탈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는 최근 개헌론을 제기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 대해 "기가 막혔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단순히 그 사실만 보자면 개헌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주변의 움직임임이 심상치 않다.
실제 그와 함께 ‘안철수신당’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진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국민동행)'이 2기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개헌국민운동을 실시하기로 했다.
안철수 전 대표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지난 28일 오후 총회를 열어 새로운 임원진을 선출한지 불과 나흘만이다. 안 전대표의 싱크탱크와 당밖 친안(親安, 친안철수) 정치세력이 ‘2기 체제’를 같은 시기에 출범시킨 것을 단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사전에 양측이 상당한 교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동행이 전국위원회는 결의문에서 '국가혁신'과 '국민통합'을 위한 헌법 개정 국민운동을 벌일 '헌법개정 국민운동본부' 구성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국민동행은 "국론분열과 정치파행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현재의 헌법을 바꾸는 개헌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고, 김덕룡 상임대표는 개헌보다 경제살리기가 우선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에 대해 "구 체제유지에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들의 몸부림"이라고 비판하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개헌을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동영 상임대표도 "개헌 운동을 위한 기초적인 준비와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국정치를 바꾸고 헌법을 바꿔 나라와 세상을 바꾸겠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국민동행의 목표가 바로 ‘개헌’에 있음을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가뜩이나 친이(親李)-친노(親盧)가 권력 나눠먹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친안(親安)마저 그런 움직임에 가세한다면, 우리의 민생과 경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부디 안철수 전 대표만큼은 이재오 의원과 손잡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