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게이트’ vs. ‘정윤회 찌라시’

고하승

| 2014-12-03 16:06:43

편집국장 고하승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검찰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파견 근무 당시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을 출국금지한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홍경식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출국금지 시켰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3일 오전 9시쯤부터 박 경정의 근무지인 서울 도봉경찰서 3층 정보과와 박 경정이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또 이날 오전 9시 50분 경부터는 서울시 도봉구 하계동에 있는 박 경정의 자택에서도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검찰은 이날 박 경정이 사용중인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했던 각종 문건 등을 다량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조만간 문서유출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문서의 내용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조작인지, 특히 그 문서가 누구의 지시에 의해 왜 작성했는지 등등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것이다. 그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모든 궁금증이 해소될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조급증이 문제다.

이 사건의 개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청와대는 일단 ‘정윤회 찌라시’라며 문건의 내용에 대해선 별 무게를 두고 있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친박 핵심 홍문종 의원도 이날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문건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사실상 ‘찌라시’로 규정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비상대책회의에서 ‘정윤회 게이트’로 규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비선실세 국정농단과 문건유출은 어느 것 하나 간과해선 안 되는 국기문란이자 중대한 범죄"라며 "결국 국회에서 사건을 다뤄야 한다. 상설특검 1호나 국정조사가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문건 유출보다도 ‘국정농단’이라는 내용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당 우윤근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 넘게 남아 있는데 청와대 권력암투가 표면화되고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는 것은 불행"이라며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의혹과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국회 출석과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국회 운영위 소집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세균 비대위원은 “제왕적 인사, 무검증 인사가 내부 권력다툼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게 정윤회 게이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새누리당 친박계와 청와대는 논란이 되고 있는 문건을 ‘정윤회 찌라시’로 규정하고 문서유출의혹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정윤회 게이트’로 명명하고 그 내용에 더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 사건은 정말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만큼, 그 내용에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문제의 청와대 내부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조 전 비서관도 전날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문건이 사실상 ‘찌라시’라는 점을 시인했다.

물론 조 전 비서관은 그 문건이 ‘찌라시’라는 지적에 “신빙성이 60% 이상”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 반박이 되레 그 문건이 ‘짜라시’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증권가에 떠도는 사설정보지인 ‘찌라시’들이 대부분 그런 형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 강남 어느 식당에서 청와대의 모 비서관이 묘령의 여인을 만나 식사를 했다고 치자. 이런 사실은 쉽게 확인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의 관계나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의 내용은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 하거나 쉽지 않다. 여기에 둘 사이를 연인, 혹은 불륜으로 단정하는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둘 사이에 입에 담기 힘든 음담패설이 오갔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그 비서관은 단번에 부도덕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묘령의 연인이라는 사람은 그 비서관의 딸로, 단순히 부녀지간에 식사를 했을 뿐이었다면 그로인해 낙인찍힌 비서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찌라시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사실 조 전 비서관의 주장은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사실이고, 정확한 장소와 시간까지 맞췄기 때문에 “신빙성이 60% 이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얼토당토않은 찌라시 내용을 가지고, 더 이상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다만 청와대의 공식문서가 유출됐다는 점에서 유출자를 가려내 엄벌에 처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문서유출이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어난 만큼, 김기춘 비서실장은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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