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가벼운 ‘입’

고하승

| 2015-01-14 15:06:53

편집국장 고하승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건파동 배후는 K,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적힌 수첩을 보는 모습이 한 카메라 기자에게 포착됐다. 그로인해 정국이 어수선하다.

이른바 ‘김무성 수첩 메모’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대략 이렇다.

지난해 12월18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신용한 청년위원회 위원장과 청년위원인 손수조 부산 사상구 당협위원장 등 청년위원들이 저녁 식사를 했다.

마침 인근에서는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과 이동빈 청와대 제2부속실 비서관, 그리고 음 행정관의 지인 등 3명이 술자리 모임을 갖고 있었다.

신 위원장과 손 위원은 인근에 음 행정관 일행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사하러 갔다가 술자리 모임에 합류하게 됐고, 뒤늦게 이준석 씨를 불러 그도 함께 하게 됐다.

그런데 이준석씨가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에게 음 행정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문건파동 배후는 김무성, 유승민”이라고 일렀고, 김 대표가 이를 수첩에 메모했다가 파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씨의 말은 사실일까?

음종환 행정관은 ‘펄쩍’ 뛴다.

그는 “그날이 (문건 유출 혐의로) 박관천 전 행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이다. 그래서 나는 ‘박관천 갖고 되냐. 박관천의 배후는 조응천(전 비서관)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준석에게) ‘조응천의 얘기를 사실로 전제해 방송에서 떠드는 게 섭섭하다. 조응천은 (국회의원) 배지 달려고 혈안이 돼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유승민을 만나고 다니고 김무성에게 들이대는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김무성·유승민이 배후’라는 얘기는 전혀 안 했다. 김무성 수첩에는 '곧 발표될 것'이라고 적혀 있던데, 당시(12월18일)는 박관천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도 안 됐고, 조응천은 체포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검찰이 조응천의 배후인 김무성과 유승민의 이름까지 발표할 거라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준석 씨가 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손수조 청년위원은 어떤 말을 할까?

그는 “칸막이가 있는 방은 아니었지만, 주위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나와 신용환 위원장은 그런 얘기(김무성·유승민 배후설)를 전혀 듣지 못했다. 만약 김무성·유승민 이름이 나왔다면 당연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기억이 안날 리가 없다. 그래서 더욱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 씨로부터 ‘문건배후’로 지목됐다는 말을 전해들은 유승민 의원은 “(이준석이 전한 얘기가) 워낙 황당해 이동빈과 음종환을 잘 아는 안봉근(청와대 제2부속비서관)한테 한번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고, 안봉근이 ‘당사자(음종환)한테 물어보니 그런 얘기를 한 적 없다고 한다’고 회신을 해왔다”며 “그런 말을 한 게 사실이라도, 청와대 행정관이 술에 취해 한 말을 두고 내가 어쩌겠느냐.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이 씨 혼자 그런 말을 들었고, 또 그것을 김 대표와 유 의원에게 전한 꼴이 됐다.

그런데 이 씨는 이런 상황에 대해 “나 혼자 거기서 술을 안 마신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뒤 정황을 비춰볼 때, 특히 음 행정관의 성향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의 성품상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설사 백번을 양보해 그가 술에 취해 그런 발언을 했더라도 그것을 과장.왜곡해 당 대표와 유력한 차기 원내대표 후보에게 전달한 것이 바람직한 행동인지 의문이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래도 한 때 집권당의 비상대책위원이라는 중책을 맡았던 사람의 행동치고는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혹시 금배지에 대한 미련 때문에 벌인 행동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존재하지도 않은 사실을 가공해 비선실세 의혹 파문을 만들어 낸 박관천 경정이나 이준석 씨의 차이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치인들의 가벼운 입이 ‘지라시’의 생산 공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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