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이 공직자?
고하승
| 2015-02-24 15:35:58
공직자에 대한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를 처벌하는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정무위를 통과하긴 했지만, '공직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됨에 따라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멈춰 있는 탓이다.
물론 국가 청렴도나 부패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김영란법의 취지를 부정하는 의견은 별로 없다.
실제 김영란법은 과거 '벤츠 여검사 사건'처럼 공직자가 거액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직무관련성 및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현행법상 처벌받지 않는 등 한계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바로 김영란법이다.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공직자가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100만 원 이하여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를 물어야하고, 여러 차례 나눠받는 경우를 감안해 동일인에게 3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받는 경우도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공직자의 가족이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도 처벌 받는다. 따라서 이 법안이 만들어지면 공직사회에 부패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정무위가 김영란법 적용대상을 헌법기관,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시도교육청, 공직유관단체 등 공공기관으로 한정한 정부안에 사립학교 및 특히 언론사를 추가시킨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언론기관의 사회적 공공성과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언론인들에게 다른 직업종사자보다 더 높은 직업윤리 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언론인들을 김영란법에 적용시키는 것은 과잉입법이다. 언론인들은 공직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공직자와 언론인은 신분이 다르다는 말이다.
공직자는 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 등에서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이다. 그러나 언론인은 어디까지나 민간영역인 회사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사실 그동안 이런 지적을 하고 싶어도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쉽지 않았다. ‘직업적 이기주의’라는 비판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실제 요즘 인터넷 상에는 “언론인들이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것은 언론인 스스로 뇌물 받을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것”이라는 식의 황당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그런 비판이 두려워 잘못된 정책에 대해 침묵하며 비판하지 않는 것 또한 언론인의 역할이 아닐 것이다.
사실 법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과잉입법은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때대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로 ‘국회선진화법’이다.
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12년 제정됐다. 물론 그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선진화법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의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만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야당의 동의 없이는 단 한건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선진화법을 ‘식물국회법’이라거나 ‘국회마비법’이라고 부르겠는가.
국회가 날치기와 몸싸움이라는 야만적 후진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회의원 개개인의 양심에 따른 문제이지, 이를 법제화한 것은 문제가 있었다.
김영란법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인에게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언론인개개인의 양심에 따른 문제이지 공직자와 같이 법으로 이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
특히 언론인들을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공직자와의 접촉이 어려워지고 언론의 취재가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자유와 알권리가 침해당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사실 언론인을 대상에 포함시킬게 아니라, 모호한 규정으로 사실상 정치인 등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원위치 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실제 법안 제5조2항 3호에서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의 경우’ 예외를 인정한 대목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정치인들에게 빠져 나갈 길을 열어 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가 정부안을 손질하면서 엉뚱하게 언론인까지 적용대상에 포함시켰지만 정작 정치인들에게는 이런 황당한 예외규정을 둔 것을 보면, 그 순수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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