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이영란 기자
| 2015-04-13 17:00:03
그의 메모에는 대통령 측근 인사 7명을 포함한 8명의 정치인이 거론돼 있다.
누군가에게는 3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7억을 그런 식으로 2억, 1억, 10만불... 자금을 줬다는 일방적 주장을 담고 말이다.
정치권을 상대로 구명운동을 펼치다 좌절한 생전의 고인이 “내가 죽으면 혼자 죽을 것 같으냐”고 독기를 보였다는데 말하자면 이 리스트는 고인이 복수의 완성을 위해 세상에 남긴 살생부인 셈이다.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무일푼에서 경남기업이라는 굴지의 대기업 회장 타이틀을 달기까지 인생역정을 아는 이들은 그의 자살이 의외라는 반응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관계 인맥을 아우르며 사업을 키워온 고인의 ‘생존능력’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는 자살 직전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 깨끗한 정부 될 수 있도록 꼭 도와달라”고 당부하는가 하면 ‘저 하나가 희생이 됨으로 해서 다른 사람이 더 희생 안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당부는 직접적인 권력 없이도 정권을 넘나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과거 행적과는 상당 부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지나치게 압축된, 그것도 특정 계파에만 치중된 ‘다잉 메시지’가 특별한 저의를 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인이 관련된, 참여정부 당시 2번의 사면 특혜 의혹과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회자되는 경남기업 인수 과정을 들 수 있다.
그 과정을 보면 고인은 사회정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흔적이 역력하다.
초법적 발상의 도움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고인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고인이 지나치게 미화되는 분위기는 우려된다.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듯 온갖 상상과 추리가 난무하고 있다.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던지고 간 死者의 복수심에 온 사회를 유린당하는 기분이어서 불쾌하다.
그의 과거를 보면 ‘희생’이나 ‘깨끗한 정부’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정황이 역력한데도 죽음이 모든 문제의 면죄부라도 되는 양 몰아가는 분위기다.
죽음을 앞두고 남긴 메시지여서 진실을 담보한다는 단정 역시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증거보다는 일방적 주장만 있을 뿐이다.
검찰 수사도 시작된 마당에 이제는 좀 더 차분하게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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