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기문 변호사

이기문

| 2015-04-19 17:07:39

▲ 이기문 변호사 나라꼴이 엉망이다.

대통령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금품제공이 이루어졌다는 부패한 정치인 성완종의 자살메모가 발견되면서다. 그는 자살하면서 '사자의 복수'를 꾀했다.

대상은 이완구국무총리를 비롯한 여권의 실세들이다. 메모에 거론된 사람들 하나 하나가 모두 금품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를 믿는 국민들은 어느 누구도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어왔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정의는 이제까지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웨인 다이어의 설파는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세상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하여 지배되어 왔다.

약육강식의 논리 그 자체가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논리 그 자체이다. 이러한 논리에 대하여 인간들이 시도한 노력이 '법적인 정의'이다.

세상의 약육강식의 논리를 법률로서도 시정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법률을 만드는 입법가들 조차도 정의롭지 못하다.

한갖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차원에서 상대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그 상대적 정의 마저도 질투와 욕심으로 점철되어있고, 거짓정의로 위장되어 있다.

대통령은 자국 국민들의 생명 함몰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가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세월호 인양을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라고는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유족들의 통곡과 오열에 대하여 그녀는 귀를 막고 살아왔다.

그러던 중 재보선의 공기가 수상하게 돌아가면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역시 그녀는 선거의 여왕 다운 모습이다.

김무성 대표의 총리 교체 여론도 즉답하지 않고,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시간을 두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국민들은 일반화 되면 정의의 관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구체적 국민들은 정의의 관념과는 상관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번 성완종이 시도한 '사자의 복수'는 성완종의 정의 관념이다. 그는 박근혜의 당선을 위하여 혼신을 다하여 뛰었다.

권력의 주변에서 떨어지는 '떡고물'들을 주워먹는 맛을 한껏 느꼈던 사람이다. 부패한 정치인의 표상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경남기업'이 자원비리 수사의 대상에 오르면서, 이를 막기 위한 로비를 필사적으로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따뜻한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복수를 준비했다.

응보적 복수였다. 법에 의한 보복이 아니라 죽음을 통한 필사의 응보적 복수였다.

정의란 사람이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라고 개념화되지만, 성완종의 사고안에서 이러한 올바른 도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분통을 터트리며 좌절을 느꼈다. 자신이 그 동안 굽어진 삶을 살아왔던 것을 그는 망각했다. 그리고 죽음으로 직선적 복수를 꾀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는 처음부터 직선과 같은 의미의 정의는 웨인 다이어의 지적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의 복수는 그를 가장 불쌍한 권력 추구형의 부패정치인의 삶을 살아왔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그는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그도 정의의 복수를 꾀했지만, 이 세상에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던 것다.

정의를 외치던 기관이, 사람이 은밀한 곳에서 ‘부정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오늘의 현실임을 다시한번 확인하면서 왠지 개운치 못한 느낌이다.

그렇다.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틀어진 나무로 만들 수 있는 직선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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