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후퇴에 국민연금 改惡까지?”

여야 국민연금 강화합의에 비판여론 비등...朴 대통령 제동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 2015-05-05 14:32:31

[시민일보=이영란 기자] 여야(與野)가 공무원연금 개혁과 연계해 국민연금 강화에 합의함에 따라 ‘국민연금 개악(改惡)논란에 휩싸였다.

여야 지도부는 지난 2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30% 더 내고 10% 덜 받는 공무원연금개혁 실무기구의 합의안을 수용한 뒤 6일 국회 본회의 처리에 합의했으나 '개악'이라는 반발 여론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치권은 5일 ‘개악’논란에도 "공무원연금법 처리 방침은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지만, 어려우면 차차선(次次善)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협상"이라며 통과 의지를 내비쳤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는 갈등이 많은 국가적 과제를 대타협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앞으로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라며 "공무원연금법은 당연히 6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 방안은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친 것에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특히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강화하기로 한 것을 두고는 “국민의 부담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전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한 근본 이유가 지금 연금 구조로는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그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며 “하지만 개혁의 폭과 속도가 당초 국민들이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야가 합의해 당초 약속한 연금 개혁 처리 시한을 지킨 점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민연금액 인상 합의에는 “국민들 부담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했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은 수용하되 국민연금액 인상 합의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에 대해 김무성 대표는 “새로 구성될 사회적 기구에서 국가 재정을 고려해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해명했고, 유 원내대표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관련) 국민적 동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대원칙이다. 여야 모두 국민에 대한 월권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 사회적 논의에 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공무원연금 개혁후퇴 논란= 공무원연금 개혁 방안 자체만 봐도 새누리당안 등 당초 개혁안에서 후퇴를 거듭했다.

보험료율, 연금지급률, 기준소득월액 상한, 보험료 납부기간 등이 새누리당이 마지노선으로 내세웠던 김용하(순천향대 교수) 안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달래기 차원에서 보수 적정화 방안과 승진제도 개선을 덜컥 약속해버렸다.

현재 공무원연금은 심각한 적자 상태여서 하루 80억원꼴로 세금으로 메워준다.

이에 여야가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미흡해서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적자 보전금이 6년 뒤인 2021년이면 다시 올해(2조9133억원) 수준을 넘는 3조153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22년이면 적자 보전금이 3조8000억원으로 하루 적자가 1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차기 정권에서 다시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5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내년에도 보험료 등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은퇴 공무원들에게 지급할 연금액이 훨씬 더 많아 세금으로 메워 줘야 할 적자 보전금이 2조1689억원(하루 6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적자 보전금 예상액은 2020년까지 2조원대를 유지하다가 2021년부터 3조원을 넘고 2023년 4조원, 2024년 5조원, 2025년 6조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해도 적자 보전액이 도로 늘어나는 것은 이번 개혁안에서 보험료를 5년간 조금씩 올리는 데다 퇴직 공무원들이 받아가는 돈은 20년에 걸쳐 서서히 깎는 바람에 개혁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는 탓이다.

게다가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연금 재정을 재계산하는데 이번에 20년에 걸쳐 인하하는 바람에 5년 뒤에 다시 연금 개혁을 하자고 하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연금 적자 보전액은 이번 정권에서 남은 2년간 4조원, 차기(2018~ 2022년) 정권에서는 14조원, 차차기(2023~2027년) 정권에서는 30조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이용하 국민연금공단 연구위원은 "이번 여야 합의안은 15년 이후에나 재정 절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어서 당장 심각한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 합의안은 은퇴 후 받는 연금 지급액을 결정하는 현 지급률은 1.9%인데 향후 20년에 걸쳐 1.7%로 낮추기로 했다.그리고 공무원들이 재직 기간에 매달 내는 보험료율은 현재 월 급여액의 7%를 향후 5년에 걸쳐 9%로 높이기로 했다.

◇국민연금 합의 월권 논란=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약 2000만 명으로 공무원연금(약 160만 명)의 13배에 가깝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가입자들의 대표 격인 공무원노조 등 단체들이 있어 협상을 진행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은 성격이 다르다. 직장인, 자영업자 등으로 나눠져 있어 협상 주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을 올린다는 이유로 매달 내는 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국민들의 거센 반발이 쏟아질 수 있다. 그런데 여야 지도부가 이에 대해 9월 처리를 덜컥 합의해 버린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야의 합의문 서명 직전 김무성 대표를 찾아가 “(합의문에 담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은 보험료를 지금(9%)의 두 배 수준인 18%로 올려야 가능하다”며 “보험료를 배로 올릴 수 있는 자신 있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이 된다”고 반대 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보험료를 낸 기간의 월평균 소득 대비 노후연금의 비율을 말한다. 가령 월소득이 200만원이라면 소득대체율이 50%일 경우 100만원의 연금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2065년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돈만 570조원(정확히는 664조원) 넘는 것 같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절감하는 돈보다 훨씬 크며 보험료를 대폭 올리면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개혁으로 2085년까지 333조원을 줄이는 대신 여야의 소득대체율 50% 약속을 위해 드는 국민 부담은 2083년까지 166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 공무원연금 개혁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지낸 이한구 의원은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년이면 기금이 고갈되는 국민연금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안 하고 국민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전형적인 선거용 포퓰리즘”이라며 “(국가 재정이 파탄 난) 그리스를 모델로 삼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특히 “여야가 지금 약간 정신을 놓았다”면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도 공무원노조가 공무원연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덜 가도록 시선을 분산시킬 작전으로 공무원연금을 많이 받는 게 아니라 국민연금을 너무 적게 받는 것이라고 이슈를 돌렸는데 새누리당은 용납을 했다”고 질책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국민연금 개혁을 주도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건 택도 없다"고 지적했다.

유 전 장관은 전날 인터넷 팟캐스트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통해서 절약한 국가재정의 5분의 1을 국민연금 쪽으로 돌려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내용"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10% 인상하려면 굉장히 많은 돈이 든다"면서 "제가 10년 전에 계산해 본 바로는 현행 9%로 돼 있는 보험요율을 최소한 12.9%까지 올려야 되는 걸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유 전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현재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내리도록 결정한 주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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