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프라이머리’의 얄궂은 운명
고하승
| 2015-10-19 16:53:19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정치적 생명을 걸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추진했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포기하고 대신 공천 특별기구를 구성해 새로운 공천 룰을 마련키로 확정했다.
이는 지난 달 30일 열린 의총에서 결정된 것으로 사실상 오픈프라이머리 백지화 선언인 셈이다.
반면 ‘오픈프라이머리’도입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였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규성 의원 등 79명의 현역의원들이 오픈프라이머리 입법화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논의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오픈프라이머리라는 경선 방식을 당내에 최초로 도입한 정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창당한 ‘열린우리당’이다. 사실상 급조된 정당이다 보니 과거 정통 야당처럼 뿌리 깊은 당원들을 거느리지 못했고, 따라서 당원 중심의 경선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들을 선거인단으로 구성하는 변칙적인 묘책을 생각해내게 됐고, 그것이 바로 ‘오픈프라이머리’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기도 했다. 실제 경합지역에 대해 100% 국민투표 방식으로 실시한 경선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지지율과 후보의 인지도가 함께 올라가는 동반상승효과를 보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곧바로 온갖 문제점들이 드러난 탓이다. 특히 열성 있는 당원들의 부재로 당은 작은 외풍에도 심하게 흔들렸다. 급기야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집권당임에도 10%대로 추락하는 수모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총선과 대선에서도 큰 차이로 패했다.
당원들이 없는 정당, 당원들을 외면하는 정당이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통합민주당(열린우리당 후신, 새정치민주연합 전신)은 결국 오픈프라이머리를 포기하고, 당원중심의 경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지난 1013년 실시된 5.4 전당대회에서는 당 대표 후보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을 만들자’고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특히 당시 김한길 후보는 “당원이 주인인 민주당을 만들겠다”며 “‘민주당의 당권은 당원에게 있다’는 당헌 1조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해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때부터 야당에서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오픈프라이머리’경선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당원중심의 경선 방식에 무게가 실렸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제법 당원 조직이 탄탄한 새누리당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김무성 대표의 목소리였다.
실제 김 대표는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등의 발언으로 배수진을 치며 오픈프라이머리 강행의지를 수차에 걸쳐 언급한 바 있다.
이미 망해버린 열린우리당의 경선방식을 따라가겠다는 김 대표의 생각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야당도 문제가 너무 많아 이제는 하지 않겠다는 방식을, 여당에서 도입하겠다니 이상하지 않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누리당이 지난 달 30일 의원총회를 통해 오픈프라이머리 추진을 사실상 백지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없다던 새정치연합이 의원총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한다고 한다.
최규성 의원 등의 의총소집요구를 이종걸 원내대표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혁신위가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활동 마무리 기자회견을 갖고 "최 의원 등의 요구는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평가를 통한 하위 20% 공천배제, 예비후보자 검증을 통한 도덕성 강화 등 당헌·당규로 채택된 혁신위원회의 시스템 공천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라며 "기득권 사수를 위한 반혁신"이라고 반발했으나, 의총소집 자체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러자 새누리당 김 대표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당 의총)결과를 보고 말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 놓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니 오픈프라이머리의 운명이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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