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전략’이냐 ‘정의’냐

고하승

| 2015-10-27 11:58:32

편집국장 고하승


여야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놓고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침체로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국민들은 솔직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른다. 새누리당 얘기를 들으면 그 말이 옳은 것 같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말을 듣다보면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새누리당은 현행 검인정체제하에서 만들어진 역사교과서 내용에 일부 ‘좌편향’문제가 있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새정치연합은 국정화 추진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 반대한다는 것이다.

즉 여당은 검인정체제의 교과서 ‘내용’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데 반해 새정치연합은 바로잡는 ‘방법’상의 문제를 걸고 넘어 지는 것이다. 그러니 양측이 제대로된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먼저 새누리당 주장부터 살펴보자.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26일 지금 검인정제도 하에서 만들어진 역사 교과서는 은밀하게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새누리당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세미나에 참석, “지금 교과서를 국정화하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올바르게 돌리는 것”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어 “자기 나라 역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교육받고 북한, 공산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교육 받으면, 그 학생들은 나중에 일어날 수 있는 혁명 도구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 싸움은 전적으로 정당한 싸움이고, 반드시 해야 할 싸움이고,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이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의 주장이 일부 과격한 면은 있어 보이나. “이 싸움은 전적으로 정당한 싸움이고, 반드시 해야 할 싸움이고,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이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는 말에는 필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야당도 아닌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이 문제를 놓고 딴소리를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사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의총을 거쳐 새누리당 당론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당 일부, 특히 이명박 정권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쪽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이재오 정병국 정두언 김용태 의원 등이 요즘 부쩍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그들 가운데 당시 의총에서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진정성이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일 진정성을 지닌 의견이라면 당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그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보였어야 옳았다. 그런데 그 때는 ‘찍 소리’않다가 뒤늦게 이제 와서 “반대”라고 큰 소리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이 얻어야 할 표를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 모두가 수도권을 지역구로 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히 국정화 반대의견이 높다. 그러다보니 유권자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오 정병국 정두언 김용태 의원은 속마음은 어떤지 몰라도 일단 겉으로는 ‘혁신’목소리를 내왔던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그런 전략적 판단을 하는 게 과연 옳은지 묻고 싶다.

왜곡 편향된 역사 교과서를 바로잡는 것은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다.

‘우편향’교과서도 안 되지만 ‘좌편향’교과서도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자 ‘정의’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총선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전략적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게 전략적으로 나쁠 것도 없다. 괜히 당내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어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어떤 게 옳고 그른지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매일 하루에 하나씩 좌편향 시각으로 서술된 교과서 내용을 공개하면서 문재인 대표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공개질문을 던지면, 여론은 어떤 방향으로 돌아설까?

만일 “문제없다”고 답변을 하면 종북세력 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고, “문제 있다”고 답변했다가는 국정화 반대명분을 잃게 될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에 대한 답변 대신 엉뚱한 방식으로 대응하겠지만, 그 것도 한 두 번이지 하루 한 번씩 매일 쏟아지는 질문을 모두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지만 전략적으로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 당내에서 발목 잡는 일은 그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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