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피해배상제도로서의 가상계좌 활용
엄호성 변호사
엄호성
| 2016-09-08 10:00:00
그런데 최근 들어 피해자 보호프로그램에 의해 수사 단계에서는 아예 피해자와의 접촉이 불가능하고 재판 단계에 와서는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측 국선변호인을 통해서 나머지 범죄는 피해자연락처열람등사신청을 한 후 해당 재판부에서 그 피해자에게 합의 의사를 물어보고 합의의사가 있다고 할 때에만 피해자 연락처를 제공받아 피해자와 접촉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피해자와 접촉하기가 참으로 어렵게 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직접 피해자를 만나서 사건 당시에 피고인의 구체적 사정,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진솔한 사과와 용서 구하기, 돈으로나마 잘못을 빌고 싶은 마음 등을 알리고 싶은데 피해자 측 국선변호인이나 해당 재판부와 같은 중간단계를 거쳐야 하다 보니 피해자와의 접촉이 매우 힘들고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해도 피해자의 연락처를 입수해서 피해자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형사공탁을 할 수 있었고 공탁사실 자체에 의하여 어느 정도 처벌 수준을 낮추어주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면 피해자의 연락처를 입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피해자의 동의 없이 연락처를 알게 되면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말 진심으로 피해자와 합의하고 싶은데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판결문에는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아니하고”라는 취지로 형을 무겁게 선고하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합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입증하는 제도로서 공탁 이외의 제도는 없을까? 또 수사단계에서 공탁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제도는 없을까?
형사사건 피해자에게 해당 수사기관에서 가상계좌를 부여하고 형사사건 피의자가 그 가상계좌로 돈을 입금한 후 수사기관에 통보하면 그 수사기관에서 입금사실을 피해자에게 통지하여 수령여부와 추가 입금요구 등을 확인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가상계좌입금 자체가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인식되어 수사기관에서의 구속, 불구속 결정, 재판단계에서 검사 구형량 결정, 법원의 선고형량 결정 등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더 피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아울러 피해자에게도 피의자의 사과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심리적인 치유를 얻게 될 것이다. 물론 가상계좌입금액을 수령하면 더 좋을 것이다.
나아가 이 제도가 잘 운영되면 현행 형사공탁제도를 대체하게 됨으로써 공탁절차를 이행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주민등록등본 수령, 법원에 직접 가서 공탁금을 납부하는 등의 시간과 노력이 절감되리라고 본다.
이미 공과금납부분야에서 가상계좌제도가 활용되고 있고 민사공탁분야에서 전자공탁제도가 도입되어 있기 때문에 형사공탁을 대체하는 제도로서 가상계좌활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한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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