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공희준
| 2016-11-01 14:52:28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전통의 명문 구단인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포수였던 요기 베라(1925~2015)가 현역에서 은퇴한 다음 역시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뉴욕 메츠의 감독으로 활동할 당시에 남긴 명언이다. 그는 리그 중반까지 최하위에 머물던 메츠팀을 마지막 순간 지구 우승으로 이끎으로써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안철수 의원(이하 안철수)이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파괴 사건과 관련하여 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전부 읽자마자 내 귓가에는 거의 자동으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러면 어떻게 돼야 진짜로 끝난 것이란 말인가? 야구경기가 9회 말 쓰리 아웃이 다 되어야 끝난 것이듯,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완전히 아웃되어야 끝나는 것이라고 안철수는 보고 있었다. 그는 최순실씨의 엽기적인 국가권력 횡령이 가능했던 원인이 박근혜 대통령이 자행한 헌법 파괴에 있음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안철수는 몇 가지 시국 수습책을 제시하면서 박 대통령에게는 청와대 관저에 사실상 유폐된 상태로 임기가 종료될 시점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촉구하였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1년 4개월 가까운 잔여 임기 동안 청와대에서 그야말로 숨만 쉬고 있을 것이라고 믿을 국민은 단 한 명도 없으리라. 안철수는 청와대가 주도면밀한 기획대응에 이미 나섰다면서 검찰수사가 박근혜판 ‘왕의 귀환’을 위한 면피수사로 귀결될 것임을 예고하였다. 나 또한 안철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박근혜는 5․16 군사쿠데다 이후 박정희와 어색하게 동거하던 윤보선이나, 전두환의 시퍼런 서슬에 짓눌려 고무도장의 굴욕을 감수하던 최규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록 최순실이라는 중요한 의지처가 사라졌어도 그녀는 군과 국정원,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같은 실질적이고 강력한 권력수단을 여전히 수중에 틀어쥐고 있다. 당장, 우병우와 문고리 3인방을 경질한 자리에 신속하게 후속인사를 단행한 모습만 보라. 한마디로 “박근혜 아직 살아 있네!”라고 하겠다. 죽은 것으로 보였던 권력이 친위쿠데타 시도에 성공해 권좌에 복귀한 사례는 차고도 넘칠 만큼 역사책에 수없이 널려 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넘어 국정독점이 여러 언론을 통해 충격적으로 폭로된 지난주에 야당은 과감한 승부수를 띄워야 마땅했다. 안철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체 없는 하야를 요구하고,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의 실질적 오너인 문재인은 대통령 탄핵 절차에 즉각 착수해야만 옳았다. 게임을 끝내 상처 받은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무너진 국가기강을 바로세울 절호의 골든타임을 야당은 역풍이 두렵다고, 중도표가 달아날 것이 걱정된다고 제 발로 걷어차 버렸다.
반면에 안철수의 생각은 정확히 읽힌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금처럼 청와대에 계속 놔뒀다가는 대한민국이 헤어나기 불가능한 국가적 파국을 맞이하고 말 것이라고 냉정히 판단한 듯하다. 그의 페이스북 글은 박 대통령이 자진 하야의 모양새이든, 강제적 탄핵의 형식이든 하루빨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만 나라가 직면한 총체적 난국이 극복될 수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나는 학생운동의 ㅎ자와도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노태우 정권 초기에 대학교를 다닌 까닭에 「러시아 혁명사」를 억지로 잠깐 읽기는 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레닌의 핵심 전략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였더라. 볼셰비키가 멘셰비키들이 주도하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10월 혁명을 일으킨 이유다. 그때 볼셰비키들 중에서도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 같은 몇몇 소심한 지식분자들은 역풍이 우려된다고, 보수적 농민층의 지지를 잃을 위험성이 있다고 봉기에 반대했었다.
물론 안철수는 레닌이 아니다. 레닌이 되어서도 절대 안 된다. 문제는 박근혜 정권은 케렌스키도, 멘셰비키도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에서 끝난 것은, 엄밀히 말해 끝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라스푸틴이지 니콜라이 2세 본인이 아니다. 안철수는 거국내각이든, 중간에 단어 하나 더 보태 거국중립내각이든 그것의 본질은 박근혜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데 불과하다고 날카롭게 꿰뚫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당 일각은 거국중립내각이라는 신기루에 벌써부터 들썩들썩하는 분위기이다. 국민의당이 춥고 배고픈 정당임은 나도 알고, 국민도 안다. 그러나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아무거나 덥석 집어먹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국민의당이 진정으로 조심해야만 할 일은 굶어죽는 아사가 아니다. 독 묻은 사과를 먹고 치명적 식중독에 걸리는 것이다. 본질은 박근혜 정권이고, 무늬만 거국중립일 새로운 내각의 총리실과 장관실에 벌써 마음이 가 있을지도 모를 야당 사람들에게 경계 겸 결론 삼아 다시금 요기 베라의 얘기를 전해주고 싶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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