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나 법치냐(2)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공희준

 siminilbo@siminilbo.co.kr | 2016-12-19 14:48:58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친박계의 몰표를 등에 업은 정우택 의원이 새누리당의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원내대표가 대표권한대행 역할까지 맡기로 예정된 까닭에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순장조가 되기를 스스로 택한 셈이다. 그들의 소원대로 새누리당을 빨리 흙 덮고 자게 해줄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리라.

정우택 체제의 출범으로 말미암아 비박세력 중심의 새로운 보수정당의 탄생은 이제 단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게 된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전부 독자적 대선 후보를 내보낼 터이므로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는 2017년의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4파전 양상으로 치러질 것이 분명하다. 1987년 12월 16일에 실시된 13대 대통령 선거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뚜렷한 4자 경쟁구도가 제대로 형성된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4자 구도이되 둘 사이에는 30년이라는 시차만큼이나 중요하고 본질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3김 전원이 출마한 87년 대선이 1여 3야로 전개되었다면, 2015년의 4자 구도는 여당 후보도 2명, 야당 후보도 2명인 상태로 전개될 듯싶다. 중차대한 차이점은 하나 더 있다. 1987년에는 김대중 후보의 평화민주당 진영만이 4자 필승론을 신봉한 것과는 다르게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새누리당, 비박신당 모두 4자 구도에서는 자신들이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확신할 가능성이 크다는 부분이다.

4자 구도로 펼쳐질 대선은 최근 지지율에서 죽을 쑤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에게 회생의 통로를 열어줄지도 모른다. 안철수가 제도권 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그를 유령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혀온 것이 소위 단일화 프레임이다. 하지만 4자 구도에서는 그 누구도 안철수에게 단일화나 후보 연대를 강요하기가 더는 불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여론조사 지지도에서 문재인이 1등, 안철수가 2등, 비박신당 주자가 3등, 새누리당 소속 대권 후보가 4등을 달린다고 가정해보시라. 야권후보 단일화를 구실로 안철수에게 문재인과의 협상에 나서라고 종용하는 인물이나 집단이 나타난다면 낡은 기득권 정치의 전면적 타파를 간절히 염원하는 평범한 일반 국민들은 그(들)을 정신병자 또는 특정정당의 하수인이라고 격렬히 성토할 것이 뻔하다.

물론 변수가 있기는 하다. 4자 구도가 5자 구도 내지 6자 구도로까지 확대될 개연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핵분열의 씨앗은 더불어민주당 안에 휴화산으로 잠재해 있다. 예컨대 민심은 이재명 성남시장을 압도적으로 응원하는데, 모바일 경선으로 상징되는 폐쇄적 당심만은 민심의 흐름과는 아랑곳없이 문재인 전 의원을 대표선수로 옹립할 경우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탄핵소추를 당한 국면에서도 문재인의 본선 승리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론이 팽배해 있다. 문재인에게는 확고한 콘크리트 지지층도 있지만, 지지층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의 강고한 콘크리트 반대층 또한 존재하는 까닭에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건 선거는 적극적 지지자가 가장 많은 후보가 아니라 적극적 반대자가 제일 적은 후보자가 결국은 승리의 여신과 입맞춤하기 마련이다.

여기까지가 여의도식의 현실적 정치문법 분석이다. 이제부터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당위론적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나는 금년의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당선된 정치인들은 대선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 그들은 실질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더 엄밀하게 보자면 최순실씨로부터 공천장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국민들의 분노는 새누리당 구성원들이 대선을 포기하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의 추대와 지지를 받아 대선에 도전장을 던지려는 인사들 역시도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이를테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한민국 차기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무소속 후보로서 대권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만약 그가 새누리당 소속이나 비박신당 후보로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다면 반 총장 역시 최순실 부역자라는 호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니다. 이조차 나의 안이한 정세인식이었다. 국민들은 새누리당 사람들이 당장 정치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해체만이 정답인 정당이 새누리당이고, 은퇴만이 살길인 사람들이 새누리당 정치인들임을 국민들은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광장과 거리에서 엄중히 선포하였다. 새누리당이 사라진 깨끗한 국회와 새누리당 사람들이 일제히 정계를 은퇴한 맑고 투명한 한국정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얼굴에 화색이 도는 인간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게다.

허나 새누리당을 해산시킬 방안도, 저 역겹고 꼴 보기 싫은 새누리당의 친박 8적들을 정계에서 완전히 퇴출시킬 수단도 현실적으로는 전무하다. 연인원 천만 명 가까운 숫자의 국민들이 차가운 길거리에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새누리당 해산을 촉구했는데도 말이다.

왜일까? 현재의 헌정질서가 새누리당을 확실하게 보호해주는 탓이다. 이른바 87년 헌법체제가 친박 8적들의 정치생명이나 국회의원 임기를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탓이다.

지금 당장 총선을 치른다고 상정해보자. 장담하건대 새누리당은 친박이든 비박이든 전 지역구를 통틀어 10명도 채 살아서 돌아오기 어렵다. 그만큼 박근혜 정권을 향한 민심의 분노가 거대하고,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크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단적으로 서청원과 최경환의, 김진태와 윤상현의, 이정현과 이장우와 조원진의 금배지는 앞으로 4년간 더 그들의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들에게는 억대의 국민혈세가 세비 명목으로 매년 꼬박꼬박 지급될 테고, 그들의 보좌진에게 나갈 월급도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밀리지 않고 나올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화나고 분통 터지는 일이 또 있겠는가?

국민들이 열불 날 건수는 더 있다. 내년에는 새누리당도, 비박신당도 수백억 원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거다. 선거 때가 되면 더 많은 국고보조금이 국회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들에게 지원되는 이유에서다.

이 세상에 병원 없는 병 없고, 해결책 없는 문제 없다. 한국정치 최대의 적폐이며 골칫거리인 친박들을 척결하고 퇴치할 신통한 비법이자 신묘한 특효약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바로 국회 해산이다. 최순실의 남자들로 득시글거리는 불의하고 무능한 20대 국회에 일찌감치 마침표를 찍고 대선과 함께 총선도 조기에 다시 치름으로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확 변한 유권자들의 표심에 정확히 조응하는 새로운 정권을 만들고, 새로운 국회를 꾸리자는 것이다.

국회 해산은 자연스럽게 개헌을 전제한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즉 친박들의 철밥통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현행 헌법이 사나운 경비견처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만 신나는 죽은 법치, 죽은 헌법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대다수 국민들이 행복해지는 통 큰 변화와 살아 있는 혁명의 길로 나아가느냐? 이 미룰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사활적인 선택의 기로 앞에 지금 우리는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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