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VS 북해도 터널

공희준

 siminilbo@siminilbo.co.kr | 2016-12-21 09:00:00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5.9퍼센트나 급락했다고 한다. 이건 좋은 소식이다.

지금부터는 독자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다. 지지도가 일시에 거의 6프로나 떨어졌음에도 일본의 교도(共同)통신이 조사한 아베의 최신 지지율은 무려 54.8퍼센트라고 한다. 폐서인 신분이 되어 청와대 관저에 유폐당한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하면 10배가 넘는 숫자고, 현재 우리나라 차기 대선주자들 가운데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문재인 전 의원과 견주면 30퍼센트를 더하고도 남는 수치다.

더 기분 나쁜 소식은 아베의 지지율 하락이 검증 안 된 무자격 비선실세가 개입한 국정농단 따위의 개인적 비행 때문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나름대로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결과로 지지율에서 타격을 입었다. 높은 지지율을 매끈한 피부와 맞바꾼 박근혜와는 딴판으로 아베는 고공비행중인 지지도를 발판 삼아 국운 개척을 시도했던 셈이다.

아베는 그야말로 참 나쁜 사람이다. 남북한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주변 국가들에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안겨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반성을 한사코 회피하는 한편으로 미일 동맹을 빙자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가리키는, 소위 보통국가로 개조하려 집요하게 획책하고 있다. 아베가 이끄는 일본의 몰상식과 파렴치함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문제는 결함투성이인 위안부 합의가 한국 정부의 협조와 양보가 뒷받침된 탓에 성사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통령 박근혜가 정말 죄 많은 인간인 이유다.

부지런히 상대를 욕만 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이 지구상에 별로 없다. 심지어 선거조차 이제는 폭로전과 흑색선전 등의 네거티브 공세에만 주로 의지해서는 이기기 어려운 풍토로 바뀌었다. 따라서 적을 완벽히 제압하려면 적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 적보다 신속하게 선수를 치는 것이 최선의 승리 방정식이라고 하겠다.

아베는 대단히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일본을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시킴으로써 섬나라로서 오랫동안 지녀온 숙명적 한계로부터 벗어나려는 당찬 야심을 품고 있다. 우리나라가 박근혜 탄핵과 촛불시위로 한창 시끄럽던 12월 15일과 16일 이틀 동안에 걸쳐 아베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머리는 물론이고 맨살까지 맞대고서 북방 4개 도서 반환을 교섭했다. 외신보도에 의하면 20세기 초반에 두 차례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던 앙숙지간인 나라들끼리의 정상회담이라고 보기 힘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아베가 푸틴을 자신의 고향으로 초대해 온천 관광과 유도시합 구경을 시켜줄 정도로 극진히 대접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러시아는 실은 세 번 전쟁을 치렀다. 일본이 ‘노몬한 사건’이라는 이상한 명칭으로 축소명명한 소련 시베리아 주둔군과 일본 관동군 사이의 무력충돌은 양측을 통틀어 수백 대의 전차와 항공기가 파괴되고,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였던 까닭에서다. 웬만한 나라들 간의 전면전에 해당하는 치열한 대규모 교전이었다.

아베의 융숭한 접대와 일본 정부의 통 큰 러시아 퍼주기 약속에도 불구하고 4개 도서 반환과 관련해 괄목한 만한 진전은 없었고, 이로 말미암아 아베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폭락하고 말았다. 역시 푸틴은 푸틴이고, 러시아는 러시아다. 교활하고 눈치 빠른 전직 정보원 출신을 국가원수로 둔 노회하고 능글맞은 북극곰이 일본의 얄팍한 구애와 느끼한 돈질에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 넘어갈 리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일본 외교의 망신 사태에 은근히 고소해하며 아베의 지지율 하락을 마냥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오늘날 대한민국의 처지는 그리 편하지도, 유쾌하지도 못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일본은 지구력이 있는 나라고, 일본인의 끈기는 세계 최정상급이다. 양은냄비처럼 쉽게 끓고, 쉽게 식곤 하는 현대의 한국인이나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우리가 20세기 초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근본적 원인은 한민족의 자주적 역량으로 근대민족국가를 건설하는 일에 실패한 데 있다. 여기까지는 초등학생도 아는 기초상식 수준의 근현대사다. 그런데 한 꺼풀 더 속으로 들어가 보면 대한제국은 망하고, 일본제국은 반세기 넘도록 흥한 연유는 전자는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후자는 해양으로 성공적으로 진출한 부분에 있다. 바다는 평등하고 물은 평평하다. 다만 물을 다루고 바다를 왕래하는 민족과 국가들의 능력이 불평등할 다름이다. 일본이 대구경 함포를 탑재하고 수면 위를 쌩쌩 스치듯 항해하는 근대적 대형 증기선을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건조할 때 조선은 아직도 새우젓 싣고서 마포나루 들락거리는 황포돛배나 느릿느릿 몰고 있었다.

20세기에 바다로 나아가는 경쟁의 승패가 국가의 부침과 민족의 흥폐를 결정했다면, 21세기는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경쟁력의 유무가 겨레의 운명과 나라의 성쇠를 가른다. 20세기가 대한해협에서 벌어진 러시아 발틱 함대와 일본 연합함대의 포격전으로 서막을 연 것과 달리, 21세기는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서 펼쳐진 미 육군의 에이브람스 전차와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의 T-72 탱크의 싸움으로 시작된 사실을 우리는 무신경하게 흥밋거리로만 대충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대한해협 해전은 일본 연합함대의 대승리로 끝났고, 아라비아 사막의 전차전은 미군의 압승으로 종결되었다. 둘 다 정규군 간의 전투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일방적 학살극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드넓은 태평양으로 먼저 가는 자가 이기는 20세기의 한일전에서 변변히 힘 한 번 못 써보고 허망하게 패배했다. 일본이 섬나라이며, 대양으로 향하는 출로가 훨씬 다양한 점을 감안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약간의 변명과 자기위안을 할 수 있는 대결이었다.

21세기의 신新 한일전은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누가 앞서 나가느냐에 승부의 추가 달려 있음이 분명하다. 지정학적 조건만 살펴본다면 이 경쟁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우리는 대륙과 곧바로 연결된 한반도에 터전을 잡고 있고, 일본은 유라시아 섬 바깥의 대륙에 자국의 영토라고는 밭 한 뙈기, 땅 한 평도 없는 고립된 열도국가이다.

허나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고 했다. 기존에 주어진 자연환경의 유불리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 앞에서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일본의 아베는 북해도와 사할린 섬을 직통하는 해저터널 건설을 추진 중이다. 천문학적 금액이 달할 걸로 예상되는 공사비의 거의 전액을 일본이 기꺼이 부담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일본이 대륙으로 연결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많은 공사비를 쏟아 부어도 결코 아깝지 않을 기념비적 사업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길이도 아니고 ‘폭’이 155마일이나 되는 대륙으로 가는 길이 휴전선 철조망으로 꽉 막혀 있다. 휴전선 중간중간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는 작은 숨구멍 역할을 해왔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길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 들어와 넓어지기는커녕 되레 완전히 틀어막혔다. 나라 전체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꼴이고, 민족 모두가 대륙으로부터의 산소공급이 끊어져 머잖아 질식사할 위기다.

21세기는 철도의 르네상스 시대이기도 하다. 대륙을 종횡무진 질주하는 고속전철을 비단길에, 초원길에 주도적으로 앞장서 까는 나라가 지구촌의 대다수 인류를 지배하게 되어 있다. 5대양을 자유롭게 누비는 화물선과 노급 전함들을 더 많이 보유한 국가가 제해권을 장악하고서 세계를 호령한 일과 마찬가지 이치다.

20세기 초반, 바다로 나아가게 해주는 근대적 증기선은 일본만이 갖고 있었다. 조선에는 쓸 만한 선박이 없다시피 했다. 반면에 21세기 초엽에는 한일 양국 전부가 고속철도를 제작하고 부설할 자금과 기술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기술과 기술자가 나라를 살리고, 그 기술과 기술자를 살리는 것은 정치고 정치인이다. 아베는 북해도와 사할린을 잇는 해저터널을 트로이 목마로 활용해 일본의 신간선을 유라시아 대륙 도처로 침투시키려고 한다. 북해도 해저터널을 이용해 대륙으로 통하는 일본의 신간선 열차들이 구한말 한반도 주변 해역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일본 연합함대 군함들처럼 언제 휴전선 너머에서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

평범한 국민이건 출세한 엘리트이건, 자칭 보수든, 타칭 진보든 진지하고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위기의식은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금강산 관광길을 다시 여는 범국민적 지혜와 에너지로 모아져야만 한다. 촛불로 박근혜를 이길 수는 있다. 그러나 촛불로는 오직 박근혜 정권에게만 이길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이른바 촛불시민들을 내수용에 불과하다고, 안방대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유라시아 대륙으로 먼저 나가는 자가 무조건 승리하는 새로운 한일전에서 우리나라를 확실하고 절대적인 승자로 만들어줄 유능하고 강력하며, 담대하고 진취적인 사령탑이 너무 늦기 전에 우리민족 앞에 어서 등장했으면 좋겠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