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문재인, 못난 안철수
공희준
siminilbo@siminilbo.co.kr | 2017-01-02 17:18:36
반면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과 타성이 해가 바뀌면서 더욱더 단단해질 따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형적 사례다. 그는 조용히 자숙해도 국민들의 이해와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판국에 본인이 탄핵을 당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거창한 기자간담회까지 자청해가며 되레 억울함을 호소하는 적반하장의 작태를 연출했다.
변하지 않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또한 박근혜 대통령과 난형난제다. 작년 봄에 치러진 총선 당시에 더불어민주당은 호남 지역에서 굴욕적인 대참패를 당했다. 호남 민심은 문재인 전 대표를 정치적으로 탄핵했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호남이 자기에 대한 지지를 거두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전략적 발언이었다는 투로 태연하게 뒤집었다. 그러고서는 전남과 전북을 느닷없이 갈라치기하는 엽기적이고 해괴한 정치공학을 선보이고 있다. 문재인의 사전에도 박근헤의 수첩에서처럼 ‘변화’라는 단어는 원초적으로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 셈이다.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간절히 염원하는 이유는 정권교체는 낡고 썩은 국가체제와 사회구조를 전면적으로 신속히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인 데 있다. 국가와 사회의 변혁을 가져오지 못하는 정권교체가 무늬만 정권교체인 연유다. 무늬만의 정권교체도 정권교체라면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 총독이 교체되는 일도 일종의 독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그러한 무늬만의 정권교체가 어쩌면 나타날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기형적으로 높은 상황인 데다, 문재인 전 대표가 제1야당인 더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아주 커다란 탓이다.
혹자는 문재인만 꼭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친문세력이 당내 경선을 치르는 광경을 한 번이라도 주의 깊게 지켜본 입장이라면 문재인이 후보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게다. 경선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의원들을 마치 호프집에서 골뱅이무침에 사리 추가하듯이 추가해 이미 확정된 선거인단과 마구 뒤섞어버린 당사자가 다름 아닌 친문세력이기 때문이다. 골뱅이무침에 사리추가 되듯이 중간에 갑작스럽게 보태진 대의원들이 친문 성향의 인사들이었음은 당연하다. 변화에 대한 친문세력의 저항과 역주행은 그만큼 거세고 집요하면서도 뿌리 깊다는 뜻이다.
정권이 교체되었는데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남은 길은 단 한 가지뿐이다. 혁명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평화로운 촛불혁명에 무임승차해 탄생한 정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까? 평화혁명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음을 뼈저리게 실감한 일반 민중들은 유혈사태가 동반되는 폭력혁명에 나설지도 모를 노릇이다. 평화적인 재스민 혁명이 유혈이 낭자한 내전으로 변질돼버린 ‘아랍의 봄’이 결코 강 건너 남의 일만이 아닐 수가 있는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지 않으면 나라와 국민이 크게 불행해진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됐는데도 세상이 전혀 바뀌지 않으면 나라와 국민은 더 크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낡고 썩은 종전의 국가체제와 사회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무늬만 정권교체를 과감히 뛰어넘어서, 세상을 바꾸고 시대를 바꾸는 진짜 정권교체를 목표해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의 요즘 행보는 아쉬움을 넘어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안철수는 자신이 미는 후보가 원내대표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자택에 줄곧 칩거하며 두문불출하고 있다. 그는 당의 단배식은 물론이고 유력 대선주자라면 반드시 행하기 마련인 국립묘지 참배마저 하지 않았다. 아니, 그건 괜찮다 치자. 그를 두 번이나 압도적 표 차이로 국회의원에 당선시켜준 상계동의 지역구 유권자들만이라도 신년을 맞아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 새해 덕담은 나눠야 할 것 아닌가?
상당수 국민들에게 문재인은 못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그의 지지율이 이른바 박스권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갇힌 원인이다. 그런데 자기 집에 틀어박혀 젊은 누리꾼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이불킥을 하고 있을 안철수의 모습은 대중의 시선에 너무나 못나 보인다. 국민은 못된 사람과 못난 사람 중에서 지도자를 고르라면 최악인 못난 사람보다는, 차악인 못된 사람을 선택한다. 안철수가 문재인을 상대로 오랫동안 죽을 쑤어온 배경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열정, 균형감각, 책임윤리를 정치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3대 자질로 열거했다. 나는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녀야 마땅할 세 가지 덕목으로 사명감, 책임감, 그리고 위기의식을 꼽고 싶다.
안철수는 세상을 바꾸는 진짜 정권교체를 실현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를 믿고 따라온 당원과 동지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진짜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당원과 동지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하면 내 정치생명은 당장 끝장이라는 위기의식 역시 가져야 한다.
박근혜의 친박세력은 “재벌 하기만 좋은 나라”를 만들려다가 쫄딱 망하고 말았다. 문재인과 친문세력은 “공무원 하기만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획책하는 중이다. 그들이 당장은 아무리 기세등등해도 결국 쪽박을 찰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안철수가 해야 할 일은 재벌들만 위하는 친박과, 공무원들 편만 들어주는 친문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것이다.
지도자는 공적인 문제로 분노하는 인간이다. 사적인 일로 삐치는 인물이 아니다. 허나 안철수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 토라진 중학교 2학년생처럼 상계동 자기 집에서 뜬금없이 격렬한 이불킥을 해대고 있다. 안철수가 덮고 누워 있을 두꺼운 이불을 확 걷어내고 그를 정신 차리게 만들 지혜로운 현인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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