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대한민국의 시작과 끝
이웅용
siminilbo@siminilbo.co.kr | 2017-04-12 14:44:54
인천 남구선거관리위원회 지도담당관 이웅용
▲ 이웅용
최근 들어 선거관리위원회는 매력적인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다.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대한민국’이 바로 그것이다.
요새말로 하자면 정말 심쿵하는 글귀다. 잘 치른 선거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고는 국민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더욱이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적 투쟁의 정중앙에 놓여 있는 선거를 아름답다고 하니 더더욱 역설적이다.
선거가 때가 되면 후보자들은 국민에게 크게 3종류의 인간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 좋은 후보, 나쁜 후보, 이상한 후보가 그것이다.
마치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을 연상케 한다. 내가 찍고 싶은 후보는 좋은 사람, 그를 욕하는 후보는 나쁜 사람이 된다. 그 외의 후보는 관심조차 없는 그저 이상한 후보일 뿐이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했던가? 지연, 학연 등 연고가 있다면 그 후보는 무조건 좋다. TV토론이든 인터뷰든 신문기사든 후보자를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가 있건만, 아무리 봐도 내가 좋은 후보자의 말만 귀에 쏙쏙 들어온다. 나쁜 후보가 하는 말은 무조건 마음에 안든다.
가짜뉴스는 좋은 후보는 더 좋게, 나쁜 후보는 더 나쁜 후보로 확신시겨 주는 훌륭한 정보로 탈바꿈된다. 그 내용의 진위에는 관심이 없고 말이다.
이쯤 되면 정책이나 정견을 꼼꼼히 비교·판단해보는 침착함과 합리적 사고는 의식에서 멀어져 간다. 합리적 사고와 멀어질 때 후보자를 바라보는 예리한 안목도 사라지게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주권자로서 시민의식은 사라지고 후진적 선거문화는 좀비(Zombi)처럼 확산된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선거관행을 이렇게 정의내리고 싶다. 물론 갈수록 선거문화가 성숙해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조차 좀비처럼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부연에 부연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만큼은 학연·지연·혈연 등 편견과 독선은 우리 머리 속에서 지워보자. 사회 대다수가 공감하는 가치와 규범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한다면, 적어도 (성공은 몰라도) 실패는 없다.
자유와 평등, 공정한 기회의 부여, 인간의 존엄, 청렴, 안전 등 사회의 바람직한 가치를 그 기준으로 두고, 과연 후보자가 이러한 덕목을 갖추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자.
이제 대통령선거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선거시즌(Season)이 시작된다. 그리고 투표를 통해 시즌은 마감된다. 선거(투표)가 우리사회의 갈등을 하루아침에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해결의 시작이자 끝이 될 수 있다. 느끼한 군내를 잡아주는 향신료처럼 말이다.
선거야 말로 주권자의 의사표현이자 우리의 희망이 담겨져 있는 소중한 메시지다. 소위 희망 없이 투표소를 찾아오는 유권자는 없다. 그 희망 속에는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현실적 요구뿐만 아니라 건전한 시민의식와 도덕적 가치를 신뢰하는 토대에서 자유를 향유하며 불합리하게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유권자의 이상적 요구도 간절하게 담겨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후보자의 됨됨이를 꼼꼼히 살펴보자, 정책과 공약을 비교도 해보고, 그 후보자의 정신세계에는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좀 더 면밀한 철학적인 고민을 해보자.
선거가 행복정치를 위한 알파(α)요, 오메가(Ω)가 되도록 말이다.
최근 들어 선거관리위원회는 매력적인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다.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대한민국’이 바로 그것이다.
요새말로 하자면 정말 심쿵하는 글귀다. 잘 치른 선거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고는 국민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더욱이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적 투쟁의 정중앙에 놓여 있는 선거를 아름답다고 하니 더더욱 역설적이다.
선거가 때가 되면 후보자들은 국민에게 크게 3종류의 인간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 좋은 후보, 나쁜 후보, 이상한 후보가 그것이다.
마치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을 연상케 한다. 내가 찍고 싶은 후보는 좋은 사람, 그를 욕하는 후보는 나쁜 사람이 된다. 그 외의 후보는 관심조차 없는 그저 이상한 후보일 뿐이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했던가? 지연, 학연 등 연고가 있다면 그 후보는 무조건 좋다. TV토론이든 인터뷰든 신문기사든 후보자를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가 있건만, 아무리 봐도 내가 좋은 후보자의 말만 귀에 쏙쏙 들어온다. 나쁜 후보가 하는 말은 무조건 마음에 안든다.
가짜뉴스는 좋은 후보는 더 좋게, 나쁜 후보는 더 나쁜 후보로 확신시겨 주는 훌륭한 정보로 탈바꿈된다. 그 내용의 진위에는 관심이 없고 말이다.
이쯤 되면 정책이나 정견을 꼼꼼히 비교·판단해보는 침착함과 합리적 사고는 의식에서 멀어져 간다. 합리적 사고와 멀어질 때 후보자를 바라보는 예리한 안목도 사라지게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주권자로서 시민의식은 사라지고 후진적 선거문화는 좀비(Zombi)처럼 확산된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선거관행을 이렇게 정의내리고 싶다. 물론 갈수록 선거문화가 성숙해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조차 좀비처럼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부연에 부연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만큼은 학연·지연·혈연 등 편견과 독선은 우리 머리 속에서 지워보자. 사회 대다수가 공감하는 가치와 규범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한다면, 적어도 (성공은 몰라도) 실패는 없다.
자유와 평등, 공정한 기회의 부여, 인간의 존엄, 청렴, 안전 등 사회의 바람직한 가치를 그 기준으로 두고, 과연 후보자가 이러한 덕목을 갖추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자.
이제 대통령선거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선거시즌(Season)이 시작된다. 그리고 투표를 통해 시즌은 마감된다. 선거(투표)가 우리사회의 갈등을 하루아침에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해결의 시작이자 끝이 될 수 있다. 느끼한 군내를 잡아주는 향신료처럼 말이다.
선거야 말로 주권자의 의사표현이자 우리의 희망이 담겨져 있는 소중한 메시지다. 소위 희망 없이 투표소를 찾아오는 유권자는 없다. 그 희망 속에는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현실적 요구뿐만 아니라 건전한 시민의식와 도덕적 가치를 신뢰하는 토대에서 자유를 향유하며 불합리하게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유권자의 이상적 요구도 간절하게 담겨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후보자의 됨됨이를 꼼꼼히 살펴보자, 정책과 공약을 비교도 해보고, 그 후보자의 정신세계에는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좀 더 면밀한 철학적인 고민을 해보자.
선거가 행복정치를 위한 알파(α)요, 오메가(Ω)가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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