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기념비적 건축물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조갑제

  | 2017-12-27 14:33:40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뉴욕의 센트럴 파크 옆에 있는 달팽이 모양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은 20세기의 기념비적 건물로 꼽힌다.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콘크리트의 원반을 쌓은 듯한 나선형 구조이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도 유명한데 이는 캐나다 사람 프랑크 게리가 설계하였다. 곡면이 많은 면적 3만2500평방미터의 큰 건물. 1997년에 개관하였다. 티타니움과 유리 등으로 만든 이 건물 또한 20세기의 유명 건물이다.

이 미술관을 구경하기 위하여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 빌바오의 지역 경제도 좋아졌다.

아부다비에도 구겐하임 미술관이 건축중인데 프랑크 게리가 설계하였다. 화제의 건축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베니스엔 솔로몬 구겐하임의 姪女인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이 네 곳 모두가 20세기 현대 미술의 精髓들을 모은 곳이다.

구겐하임 家門의 元祖가 되는 마이어 구겐하임은 유대인인데 미국에서 광산업으로 돈을 벌었다. ‘예술품 수집 중독자’로 불리는 페기 구겐하임은 그의 손녀이다. 마이어의 아들 벤자민 구겐하임은 1912년 타이타닉 호를 탔다가 죽었다.

그는 데리고 탄 애인과 하녀를 먼저 구명정에 태워 보낸 다음 正裝으로 갈아 입었다. 집사와 함께 계단에 앉아 브랜디를 한 잔씩 하고 시가를 피우면서 최후를 맞았다. 그의 딸 페기 구겐하임은 유럽에서 현대 미술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20세기 초의 입체파, 초현실파 그림을 사 모았다. 그는 남성 편력이 화려하여 회고록에서 평생 1000명의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고 고백하였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는 1867~1959년 사이 70년간 정력적으로 활동한 미국 최고의 건축가이다.

설계한 것이 1000개, 완공한 것이 532개이다. 그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_)이라는 思潮를 만들었다. 자연과 人工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건축을 뜻한다.

1935년 펜실베니아의 계곡 폭포 위에 세운 폴링워터라는 이름의 별장 건물은 이 경향을 대표한다.

미국 건축 연구소에 의하여 20세기 최고의 미국 건축물로 뽑히기도 하였다. 지금은 없어진 도쿄의 제국 호텔도 설계하였다.

그는 1943년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책임자로부터 설계 요청을 받았다. 구겐하임 콜렉션이 방대해지자 상설 전시장을 갖기로 한 것이다.

라이트는 15년 동안 700장의 스케치를 하였다고 한다. 미술관 책임자는 ‘정신의 神殿’(temple of spirit)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라이트는 이 건물에 철학과 감성과 상징성을 불어넣으려 하였다. 이 건물의 기하학적 요소인 원형은 무한대, 삼각형은 구조적 일체감, 나선형은 유기적 진화, 사각형은 통합성을 상징하였다.

라이트의 설계가 너무나 혁명적이라 다른 건축가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 성명을 내기도 하였다.

나선형 통로를 걸어 올라가면 천장 아래까지 닿게 되고 그림들은 통로 벽면에 걸려 있다. 화가들은 관객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비스듬한 벽면에 그림을 제대로 걸 수 없다고 불평하였다.

라이트는 “그렇다면 그림을 두 조각으로 잘라서 걸어라”고 맞섰다. 세탁기 같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라이트는 그런 소리를 묵살하였다. 라이트는 미래의 관객들에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그림을 감상하도록 권하였다.

그는 미술관이 완공(1959년 11월)되기 여섯 달 전에 사망하였다. 라이트가 첫 번째 스케치를 한 지 16년이 지난 뒤였다. 일단 완공된 후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한국의 한 건축가는 이 미술관을 본 충격이 평생을 지배하였다고 했다. 이 미술관 자체가 아방가르드(前衛的) 조각품이란 평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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